<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너새니얼 호손의 대표작 『주홍글씨』는 17세기의 보스턴을 배경삼아 간통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미국 소설이다.발표된 것은 1850년.그 3년 후 호손은 영사(領事)로 영국에 파견된다.작가겸 외교관이었다.
영국에도 가 있었던 외교관 출신인 아리영 아버지는 그래서 더욱 호손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길례는 대학때 그 제목에 끌려 『주홍글씨』를 읽었다.주홍색을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원작명은 『더 스칼렛 레터』.
스칼렛은 스칼렛 레드라고도 불리는 밝은 홍색이다.우리나라에선일찍이 비색(緋色)이라 했다.잇꽃의 빨간 꽃송이와 심황 뿌리의노란 울금(鬱金)을 섞어 물들여 만드는 빛깔이다.
타는 듯 말간 그 발랄함이 좋았다.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는 간통죄로 보스턴 형무소에서 옥살이하다 나온 젊고 아름다운 유부녀다.그녀의 수의(囚衣)가슴엔 A라는 주홍글씨가 뚜렷이 수놓아져 있다.간통한 여인임을 나타내는 표시.「어덜터리(adultery)」,즉 「 간통」의 머리글자였다.
헤스터는 영국인 노(老)의사의 젊은 아내였다.미국 보스턴에 이주하기로 한 노의사는 아내를 한발 먼저 보내놓고 자신은 2년후에야 따라간다.여의치 않은 일이 생긴 탓이다.
보스턴에 도착해보니 아내는 생후 3개월된 사생아 아들을 두고있었다.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추궁하나 헤스터는 입을 열지 않는다.노의사는 복수의 집념에 사로잡힌 악마로 화하고,아이 아버지가 덕망 놓은 성직자 딤스데일임을 알아낸다.
형기를 마치고 나와 보스턴 교외의 오두막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살게 된 헤스터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헌신하다.강한 여성으로 변신한 그녀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죄를 감지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
이제 보스턴 사람들의 눈엔 헤스터 가슴의 A가 「에인절(angel)」,즉 「천사」의 머리글자나 「에이블(able)」,즉 「능력」의 머리글자로 보인다.
딤스데일은 헤스터 모자를 데리고 유럽으로 도망치려고도 했지만결국 죽음을 결심한다.
신임 총독의 축하식에서 훌륭한 설교를 한 다음 그는 헤스터와어린 아들 펄의 손을 잡고 처형대로 올라가 가슴을 헤쳐보인다.
가슴엔 선혈로 낭자한 A자가 그어져 있었다.스스로 칼질한 피의주홍글씨였다.
젊은 성직자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복수 대상을 잃은 노악마도1년 후에 죽는다.막대한 유산을 헤스터 모자에게 남기고….
사랑의 윤리를 추구한 그 작품에 길례는 크게 감동받았었다.동시에 궁금했다.
-어덜터리(간통)를 에이블(능력)로 승화시킨 것은 대체 무엇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