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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책읽기] 또 하나의 권력 - 일본 야쿠자에 대한 진지한 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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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ヤクザと日本ー近代の無頼
(야쿠자와 일본-근대의 무법자)

미야자키 마나부 지음
치쿠마서방,
270쪽, 780엔

얼마 전, 유명 연예인이 항간에 떠도는 괴소문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외 관심을 모았다.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낙착됐지만, 이 ‘괴담’에 도입된 가장 자극적인 극적 장치는 ‘신체 일부 절단’ 등 같은 흉흉한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야쿠자 조직이었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이미 익숙히 보아온 바와 같이 야쿠자는 렉서스 자동차나 소니의 전자제품으로 대표되는 세련된 일본과는 동 떨어진, 일본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하는 혐오스런 타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과연 정확한 것인가.

전국 각지에 수백 개의 사무소를 둔 일본최대의 폭력조직 야마구치 구미(山口組)는 전성기인 1963년에는 18만4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렸다. 이는 일본의 자위대원보다 많은 숫자이다. 당시 제2대 조장이던 다오카 가즈오는 고베 경찰서의 ‘1일 서장’을 하기도 했다. 비서구세계에서 가장 먼저 법과 제도에 의한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하는 일본에서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고자 하는 이 책은 야쿠자에 관한 진지한 학술 평론이다. 야쿠자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이미 수 십여 권 나왔지만, 이 책의 내공은 한결 돋보인다. 그것은 저자의 특이한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일본식 전통에 따라 ‘가업’을 이었다면 조직폭력단의 우두머리가 되었었겠지만, 좌파 무정부주의자의 성향을 지닌 저자는 모든 권력(국가의 정치적 권력이나 야쿠자의 사회적 권력을 포함해서)과 거리를 두는 길을 택했다.

저자에 의하면, 야쿠자의 기원은 16세기 전국(戰國)말기 하극상 시대에 등장했던 농민 출신의 용병들이다. 도박판을 관장하거나 노동력 알선 등을 하던 야쿠자는 중앙정부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하층사회에서 일정한 권력을 유지했다.

메이지유신 전후의 혼란기에는 번(藩)이나 정부에 협력하여 미성숙 단계의 정치적 권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다. 중앙권력의 입장에서 야쿠자 집단의 전투력·실전경험·동원력·단결력은 매력적인 이용 대상이었다.

근대의 야쿠자는 산업화의 길목인 항구에서 태어났다. 1900년 전후, 와카마쓰항(若松港)에서 부두노동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의사(擬似)가족적 노동조합이 그 원형이고, 점차 고베·오사카·요코하마 등지로 파급됐다. 거의가 피차별 계급 출신(여기에는 부락민과 일부 조선인도 포함된다)인 그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받은 일당으로 도박판을 벌였고,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회 저변부 내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그 대가를 받았다. 하층계급에게 야쿠자는 일종의 자력구제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야쿠자가 노동력 공급업 다음에 진출한 분야는 예능종사자를 상대로 한 예능흥행업이었다. 근대 초기에 대중에 개방된 공연장은 건달이나 주정꾼이 모이는 소란스럽고 위험한 공간이었다. 야쿠자는 치안 관리인이 되어 안전한 공연을 보장해주는 대신 공연 수익의 일부를 취했다.

사회구조·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라 야쿠자는 당초의 공동사회형 조직에서 점차 이익사회형 조직으로 변모해갔다. 자기 지역의 범주를 넘어 광역화함에 따라 당연히 토착 세력과 항쟁이 빈발했다. 이것이 야쿠자에 대한 사회적 제재의 강화로 이어지게 됐다.

야쿠자라고 하는 저변부를 통해 근대일본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고 유익하다.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책을 읽다 보면 국가권력이 야쿠자라는 불법 폭력조직보다도 더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라는 자각에 절로 방점이 찍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윤상인 <한양대 교수>

미야자키 마나부

논픽션작가. 1945년 교토 출생. 야쿠자 우두머리인 아버지와 도박사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교시절에 일본공산당에 입당했고, 와세다대에 진학한 후, 강경 폭력투쟁조직 리더가 됐다. 『돌파자(突破者)』『근대의 나락』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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