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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꿈꾸던 자매 함께 연습하던 그 모습 아직도 눈에 선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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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막내 해아양이 중1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옛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삽화. 이 그림을 갖고 있는 조모(국어) 교사는 “해아는 수업 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들, 우리들의 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굳세게 살아가자.”

서울 창전동 네 모녀의 죽음이 알려진 11일, 큰딸 정선아(21)씨의 인터넷 홈페이지엔 선아씨가 생전에 남긴 글이 올려져 있었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세 자매’의 대사를 인용한 것이었다. 극중 큰딸 올가가 동생 마샤와 이리나에게 하는 대사였다. 맏딸인 선아씨가 두 동생에게 평소 당부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서울 창전동 네 모녀 살해사건 희생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엔 이들의 추억과 일상, 그리고 꿈이 담겨 있었다. 살해 소식이 알려지자 이들의 홈페이지엔 친구들과 네티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해 1월 말 큰딸 선아씨는 재수 끝에 자신이 원하던 서울 모 대학 연기 관련 학과에 합격했다. 홈페이지의 희곡 대사는 합격 발표 후 큰딸이 직접 올린 것이었다. 당시 그는 세 자매의 올가 역을 연습 중인 듯했다. 대사는 사랑하는 두 동생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우는 자신을 향한 독백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아씨는 ‘굳세게 살아가자’던 세상을 떠났다. 두 동생, 엄마와 함께 좁은 여행가방 속에 구겨져 땅 밑 어둠 속에 파묻혔다. 홈피를 찾은 한 조문객은 “악마의 완력에 여린 꽃이 꺾였다”는 글을 남겼다. 큰딸의 고교 동기인 최연희(21)씨는 취재진을 만나는 내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착하다 못해 바보처럼 순했던 아이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며 흐느꼈다.

큰딸과 둘째 진아(19)는 같은 여고 출신이다. 빼어난 외모에 노래 솜씨까지 갖춘 자매는 학교에서 유명했다. 큰딸은 재능을 살려 뮤지컬 배우를 지망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둘째의 고교 동기 정모(19)양은 “자매가 함께 다니며 노래 연습도 하고 공연을 준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둘째는 아직 대학 합격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둘째딸의 친구 송진영(19)군은 “홈피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네 모녀는 마치 친구처럼 지냈다”고 기억했다. 진아보다 다섯 살 어린 막내 해아(14)는 그림과 글짓기에 두드러진 재능을 보였다. 막내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엔 그림과 글짓기 교내외 수상 경력이 11차례나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난해 같은 반 친구였던 한소희(14)양은 “해아는 웹툰(웹 전문 만화)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막내 해아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그의 자리가 없다. 그 흔한 국화 한 송이 놓을 데가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해아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큰딸이 하루종일 춤과 노래 연습으로 땀을 흘리던 학교 실습실은 이날 하루 종일 비어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낡은 운동화 두 켤레와 트레이닝복 세 벌만이 널따란 실습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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