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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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관 앞뜰 좌우에 심은 싱싱한 소나무와 대나무가 돋보였다.
옥처럼 흰 자갈을 박은 뜨락길과 현관은 물로 씻겨 정갈했고,한쪽 구석엔 소금이 소복이 놓여 있었다.
유숙객이 떠나는지 여관 종업원들이 한줄로 서서 절을 하고 있다. 연한 쑥색 슈트 차림의 여인이 뜨락에 세운 승용차를 타려다 길례와 눈을 마주쳤다.
한 일흔살은 됐을까.품위있어 보였으나 나이에 걸맞지않게 눈빛이 강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으나 생각나지 않았다.
새털처럼 살포시 여인이 차 안에 들어가 앉자 은회색의 승용차는 곧 소리없이 떠났다.종업원들이 계속 절하고 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남편이 현관 안에서 불렀다. 그러고보니 뭘 그리 열심히 봤나 싶었다.
『곱게 늙으신 분이에요.』 『당신은 더 곱게 늙을 거요.』 남편은 농담하듯 하고 구두를 벗었다.
『목욕탕으로 유명한 여관이래.』 『온천이에요?』 『온천은 아니지만 쑥탕,창포탕,소금탕,진흙탕… 여러가지가 있다더군.』 목욕 좋아하는 길례를 위해 남편이 신경써서 고른 여관인 것 같았다. 『대욕장(大浴場)은 아래층에 있습니다.남탕은 왼쪽,여탕은오른쪽입니다.목욕하신 후에 식사는 방으로 올리겠습니다.』 종업원이 공손히 절하고 물러났다.
목욕탕으로 가는 아래층 복도는 사진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한국과 일본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진이 나란히 벽을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정말 똑 같아요!』 『좋은아이디어야!』 길례와 남편은 동시에 감탄했다.
나란히 놓인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교토 헤이안쿄(平安京)왕궁엔 청량전(淸凉殿)이란 임금의 거처가 있었는데,그 곳에 보관돼온 은(銀)식기와 우리나라의 은그릇,놋그릇 세트를 대조해 찍은 사진도 있었다.8세기말에 일본왕이 쓰던 은그릇 과 은수저였다.밥그릇은 물론 수저 모양새까지 요즘의 우리 것과 놀랄만큼 똑같다. 오늘날의 일본사람은 주로 나무젓가락으로만 식사하지만,8세기말까지만 해도 왕족은 한국사람처럼 쇠수저를 쓰고 있었음을알 수 있었다.
한.일 문물 비교전시장같은 복도엔 그 밖에도 여러가지 사진이나란히 걸려 있었다.
곡옥(曲玉),동경(銅鏡),가얏고,무구(巫具),제철(製鐵)기구,농기구….한국과 일본 것을 알뜰히 비교해놓은 것이다.여관주인의 역사의식이 엿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목욕 후의 저녁식탁에서 길례는 잇따라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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