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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뚱보 학생’ 사회서 살찌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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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청소년 비만을 유발하는 탄산음료·라면 등 칼로리는 높고 영양가가 낮은 이른바 ''정크푸드''를 초·중·고교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진은 서울 한 구청에서 열린 ''날씬이 교실''에 참가한 학생들. [중앙포토]

서울시교육청은 이달부터 학교 내 자동판매기 또는 매점에서 콜라·사이다 등 탄산음료와 라면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2007년 8월 발표한 ‘학교 건강 증진 대책’에 따른 후속 대책이다. 당시 교육부는 탄산음료와 라면 등이 ‘청소년 비만’을 일으키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한 뒤 이를 학교 내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가청소년위원회도 2006년 학교 내 탄산음료 판매를 금지토록 권고한 바 있다.

탄산음료나 패스트푸드는 칼로리만 높고 영양가는 낮은, 이른바 ‘정크푸드’로 불린다. 현재 미국이나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정크푸드를 학교에서 퇴출하는 데 애쓰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 비만은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개인의 탓인가.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을 방치한 사회 차원의 문제인가.

◇비만이란=비만 판단 유무는 키·몸무게와 상관 관계가 높다. 비만은 체질량 지수(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95를 넘을 때를 말한다. 비만은 트랜스 지방 또는 과다한 설탕을 소비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은 단순히 외모상으로 ‘뚱뚱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비만은 전체 사망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치명적인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정했을 정도다. 비만이 가져오는 사회적 손실도 막대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비만 치료에 들어간 진료비와 소득 손실은 2조원(2007년)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청소년 비만 왜 문제인가=우리나라의 청소년 비만율은 매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초·중·고교생들의 비만율은 2002년 9.4%에서 2004년 10.0%, 2006년 11.7%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비만이 느는 이유를 공부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입시 공부가 주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과다한 영양 섭취, 잦은 간식, 운동 부족 등 잘못된 식생활 습관을 갖는다는 것이다.

청소년 비만이 가져다 주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고재성 교수는 “청소년 비만은 젊은 나이에 지방 간염이나 대사증후군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며 “특히 청소년 비만은 대인관계 기피, 자신감 상실,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탓인가, 사회 문제인가=‘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는 청소년 비만을 주요 사회 문제로 규정한 뒤 다각도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즉 청소년 비만은 ‘비만 권하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세계적 추세다. 예컨대 2006년 11월 유럽 48개국 보건장관들은 ‘비만과의 전쟁 공동 헌장’을 채택했다. 이 헌장에는 각국 정부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정크푸드 광고를 규제하기로 합의했다. 기름지고 설탕이 많은 식품도 어린이한테 팔지 못하도록 했다. 실제로 영국은 15세 청소년 대상 TV 프로그램 시간대에는 소금·설탕·지방 등이 많이 함유된 식품과 음료수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스웨덴도 어린이 TV 프로그램 시간대에 정크푸드 광고를 전면 금지했다.

◇어떻게 풀까=보건 전문가들은 교육부나 서울시교육청이 정크푸드를 학교 내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청소년 비만을 사회 문제로 인식한 첫 출발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 비만을 가정이나 학교 내의 문제로 간주하기보다 사회적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TV 시청과 컴퓨터 이용 시간이 길수록 청소년 비만 위험이 최대 다섯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크푸드의 학교 내 반입 금지뿐 아니라 TV 시청 또는 온라인 게임 이용 지도 등 청소년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 비만을 일으키는 근원적 요소로 꼽히는 입시 스트레스를 줄이는 교육 정책을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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