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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차세대 본좌는 나의 것’ … ‘게임 강호’에 짙은 전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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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10년 전에 나온 게임인데도 스타크래프트의 열기는 온라인에서 여전하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줄지만 프로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마에스트로 저그’ 마재윤의 경기가 열리면 인터넷 세상은 온라인 응원의 물결로 넘쳐난다. 40대 이상의 세대가 선동열과 최동원 투수의 프로야구 맞대결에 열광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도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많지만, 한국의 게임산업 규모는 연간 6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게임 대결을 중계하는 e스포츠가 프로레슬링이나 종합 격투기 못지않은 인기를 끄는 것이다. 축구 팬들이 월드컵을 손꼽아 기다리듯 국가 대항 게임대회가 벌어질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게임산업과 e스포츠의 현황을 정리해 봤다.

이달 들어 온라인에서는 e스포츠의 차세대 리더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2회 우승자인 김택용(SK텔레콤)이 신인 이영호(KTF)에게 패하면서 과연 김택용이 차세대 ‘본좌’감인가 하는 의문이 다시금 제기된 것이다.

10, 20대 게임 매니어들은 e스포츠 세계의 최고 프로게이머를 상징하는 ‘본좌’에 대한 관심이 크다. 미국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게임 등으로 10년 역사를 꾸려온 한국 e스포츠계에서 이의 없이 본좌로 불리는 스타급 프로게이머는 임요환(공군)·이윤열(위메이드)·최연성(은퇴)·마재윤(CJ) 넷 정도다. 팬들이 인정하는 본좌 요건은 개인리그인 온게임넷 스타리그(스타리그)와 MBC게임스타리그(MSL)를 다 제패하거나, 개인리그를 3회 이상 우승한 경우다. 여기에 한 시즌(1년) 승률 7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김택용의 경력을 보면 ‘차세대 본좌’에 가장 가깝다. 지난해 3월 곰TV MSL 시즌1 결승에서 ‘마본좌’로 통하던 마재윤을 3-0으로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예상 승률이 1%도 되지 않는 절망적 상황에서 이룬 기적이었다. 당시 17세이던 김택용에게 역대 최연소 개인리그 우승을 안긴 이 경기는 ‘33대첩’(경기일이 3월 3일)으로 불렸다. 이후 김택용은 MSL에서 연속 우승했지만 세 번째 문턱에서 박성균(위메이드)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때 그의 본좌 가능성을 놓고 ‘시기상조’ ‘자격 미달’ 등의 논쟁이 일었다. 결국 올 들어 이영호는 ‘본좌’ 등극을 간절히 바라는 김택용에게 피니시 블로를 날린 셈이다.

게임 취미가 없는 분들에겐 먼 나라 얘기 같겠지만 e스포츠는 젊은 층에 축구나 야구 못지않은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게임산업은 연 6조원(2007 게임백서) 규모다. 세계 시장의 10% 선이다. 수출액도 6400억원으로 영화와 드라마 수출액을 합한 것의 28배에 달한다. 1990년대 말 세계 최초로 e스포츠란 용어를 만들어낸 것도 우리나라다. 이후 우리나라의 e스포츠 시장은 2005년 400억원, 2006년 500억원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e스포츠는 1700만 명이 넘는 팬을 바탕으로 연간 70만 명이 경기장을 찾는 대중적 여가문화의 하나로 성장했다. 상당수의 케이블채널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온게임넷과 MBC게임 두 채널은 누적 흑자가 각각 100억원을 넘었다.

그래서 연간 10억~20억원을 투자해 프로게임단을 만든 기업들은 막대한 홍보효과를 얻고 있다. 지난해 4월 프로게임단을 창단한 CJ는 8개월 만에 132억원의 홍보효과를 냈다고 밝혔다. 투자 비용 20억원의 6배가 넘는 유·무형의 이득을 봤다는 이야기다. STX는 신입사원 면접에서 ‘STX가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을 통해 처음 기업 이름을 들었다’는 답변이 많이 나오자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 연말 게임단에 그룹 차원에서 ‘홍보효과상’을 주기도 했다. 공군이 지난해 4월 임요환을 전산특기병으로 선발해 e스포츠팀을 만든 뒤 젊은이들의 공군 지원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e스포츠에서 처음으로 억대 연봉을 기록한 임요환은 56만 명의 팬클럽이 있다. 웬만한 연예인을 훨씬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임요환 있는 곳에 시청률 뜬다’는 말을 낳았지만, 이는 그가 공군 사병이 된 이후에도 여전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애초 홍보효과를 기대하고 만든 e스포츠팀에서 억대 이적료를 받는 스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태민이 SK로 이적하면서 1억8000만원의 이적료를 받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설 무렵에는 김택용(MBC게임)이 국내 프로게임 사상 최대인 2억원의 이적료를 받고 SK텔레콤으로 전격 트레이드됐다. 프로게임이 웬만한 프로스포츠 못지않은 위상을 갖추게 됐다는 단적인 예다. 뜨거워진 본좌 논쟁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박명기 일간스포츠 기자, 김창우 기자

본좌=무협소설에서 지위나 권위가 높은 사람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본인의 높임말을 뜻하는 1인칭 대명사다. 온라인에서는 어떤 분야의 최고수 또는 가장 정통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이 아닌 제3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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