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한국 근대 예술계가 손꼽는 두 천재의 동반자이자 영감을 불어넣은 애인으로 문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중퇴한 그가 친척인 화가 구본웅의 친구 이상을 만난 것은 문학에 대한 꿈을 키우던 열여덟살 때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시인이자 건축가인 이상이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왔으며 스물일곱 살 한창 나이에 요절한 이상의 최후를 지켰다.
김향안은 44년 두번째 결혼한 수화(樹話) 김환기와 50년대 프랑스 파리를 거쳐 60년대에 미국 뉴욕에 정착한 뒤 수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점화(點畵)가 익어가는 데 힘을 보탰다. 수화의 그림에 문학적 향기가 그윽했던 배경에 문학도인 김향안이 있었다.
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짓고 수화의 유작과 유품을 빈틈없이 갈무리했던 이도 부인이자 예술동지였던 고인이었다. 지상에서 못다한 그림 얘기를 나누려는 듯 고인의 유해는 뉴욕 근교 발할라 마을의 캔시코 묘지에 있는 수화의 묘소 옆에 묻혔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