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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원도 얕잡아보는 학교 체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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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도대체 우리나라 학교 체육수업이 어느 정도이기에 일개 기숙학원도 얕잡아보는 것일까.

서울 시내 한 공립고 체육교사로부터 실정을 들었다. “중학교까지는 체육 수업이 그런 대로 이뤄진다. 그런데 고2부터는 자습이나 영어·수학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고, 고3 여름방학이 지나고부터는 아예 체육 수업은 전폐한다.”

이 교사는 “남학생은 절대 다수가 체육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운동을 통해 땀을 흠뻑 흘리고 스트레스를 발산할 기회가 없으니 학교 생활에 재미를 못 느끼고 또래끼리 어울리다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1994년 체력장이 폐지된 이후 체육 수업은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0년 시행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 중3부터는 체육 수업이 주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다. 또 필수였던 체육이 음악·미술·체육 중에서 선택하는 과목으로 바뀌었다. 2011년부터는 체육이 다시 필수과목이 된다고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내년부터 체육 수업의 평가를 0∼100점까지의 절대평가에서 3단계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체육은 변별력을 잃은 평가 방식 때문에 내신에서 제외된다. 내신에 반영하지 않는 수업에 진지하게 임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열악한 수업 환경도 큰 문제다. 서울 시내 1200여 개 초·중·고교 중에서 운동장에 잔디(인공 또는 천연)가 깔린 곳이 60개, 전용 체육관을 갖춘 곳은 95개교에 불과하다. 눈·비를 맞으며, 황사를 삼키며 꽁꽁 언 맨땅에서 축구나 농구를 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선진국은 어떤가. 일본·미국·독일·영국 등은 초등학교에서 고교까지 체육 수업을 주당 3시간 이상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방과 후 각종 스포츠클럽 활동을 권장한다. 대학은 입학 전형에서 고교 시절 스포츠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나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일본의 대기업은 운동선수 출신을 선호한다. 이들이 체력과 정신력이 강하고 책임감과 남을 배려하는 의식도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로버트 블룸 교수팀의 연구 결과도 주목해 보자. 3345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5년간 연구한 결과 학교 체육수업에 매주 세 번 이상 참가하면 성인이 됐을 때 비만이 될 확률이 20% 이상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기초체력인증제, 중학생에게는 봄·가을 체력 평가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 가는 것과 상관없는’ 이 제도가 실효를 거둘 가능성은 작다.

엄마들은 헬스클럽에서 뱃살을 빼고, 아빠들은 건강을 위해 등산이며 마라톤에 열심이다.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지들 생각만 하고, 왜 그리 참을성이 없는지…”라며 혀를 차고, 나날이 뚱뚱해지고 나약해지는 아이들을 탓한다. 그런 분들에게 “체력평가를 대입에 반영하고, 고3도 체육 수업을 시키겠습니다”라고 하면 “정신 나갔느냐”며 펄펄 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띄어쓰기와 각종 부호를 빼고도 6000자가 넘는다. 화려한 말의 성찬 속에 ‘체육’이란 두 글자, 혹은 ‘스포츠’란 세 글자는 없었다. “체육을 홀대하는 것은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잉태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체육교육담당 성계숙 장학사의 말이다.

정영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