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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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14) 친구를 만나게 하겠다니.어렴풋이 사이토의 그 말을 들으면서 태수는 찢어진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흘러들고 있는 눈을 떴다.바닥으로 코피가 툭툭 소리를 내듯이 떨어져내렸다.
태수는 나무토막처럼 몸을 굴려 천장을 쳐다보며 마룻바닥에 드러누웠다.사이토가 소리쳤다.
『가지고 들어와라.』 네,하는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몇 사람의 발소리를 들으며 태수는 눈을 감았다.문이 여닫히는 소리,다가오는 발소리….그리고 무엇인가가 옆에 놓여지는 것을 태수는눈을 감은 채 느끼고 있었다.사이토의 장화발이 다가와 그의 얼굴을 뭉 개듯이 짓누르며 말했다.
『눈을 떠야 네 친구를 만날 거 아니냐.』 그래.이건 시작일뿐이야.살아남지 못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가.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고 작심했을 때부터 나는너를 기다리고 있었어.내가 노린 건 둘이었어.하나는 내 동포들을 도망치게 하는 거였고,하 나는 첩자가 어떤 놈인지를 잡아내는 거였지.나는 둘 다 해낼 거다.오늘 밤에는 또 여남은 명이섬을 빠져나갈 테니까.너덜거리는 입술에 피를 흘려가면서 태수는눈을 떴다.
『이걸 봐라,네 친구다.』 피투성이 얼굴로 태수가 고개를 돌렸다.그의 옆에는 들것에 담긴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흐린 눈을 끔벅이면서 태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뿌옇게 바라보이던 들것위의 물체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것은 사람이었다.찢어지고 으깨어진 채 물에 부어오른 시체였다.태수의 흐린 눈길이 그의 얼굴에 가서 멎었다.으아아아.소리치며 태수가 고개를 꺾었다.
들것에는 어젯밤 방파제 밑에서 헤어진 동진이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사이토의 장화발이 태수의 목덜미를 걷어찼다.
『이것들이 제법 재주를 부렸어.한쪽에서는 와와 소리를 지르면서 그틈에 한쪽에서는 사람을 도망치게 해? 이 사이토가 그 정도에 속을 인간인 줄 알았냐?』 지팡이야 도랑 건널 때야 요긴하지.그러나 도랑 건너면 지팡이는 버리는 거다.이 일 끝나면 널 잡으러 들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조선사람들이다.함께 가자.어쩌자고 여기 남겠다는 거냐.마지막 준비를 하던 날,새벽바다를 내다보면서 동진이가 했던 말을…태수는 쓰러진 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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