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나는, 스트레스 덩어리” 올림픽 예선 앞두고 ‘진솔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승엽이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타이중 구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타이중=이호형 기자]

‘국민타자’의 속내는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새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소속팀 4번 자리를 지키는 것도 모두 걱정거리라고 했다.

이승엽(32·요미우리) 얘기다.

그는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대만에 가 있다. 7일 타이중에서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을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일 오전 훈련이 끝난 뒤 기자는 시내 한 식당에서 이승엽 선수와 마주 앉았다. 그는 “아직도 팬들에게서 박수를 받는 게 무척 즐겁고 기다려진다”면서도 “하지만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모든 게 어색하고 두렵다”며 말문을 열었다.

“일본 생활이 벌써 4년째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온 뒤 성격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은 편한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힘들고 귀찮다”고 실토했다. 그러다 보니 “오만해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지난 겨울 한국의 한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어른들이 와서 사인을 요청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식사를 마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돌아서면서 욕을 하데요.”

타이중 시내 일식당에서 인터뷰를 하며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고 있는 이승엽. [타이중=김성원 기자]

그러면서 이승엽은 “이런 식으로 심한 욕을 자주 듣는 편이다”며 “내가 ‘쿨’하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공인이라서 무척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자가 “겸손한 야구선수 이미지와 다르게 주위에선 냉정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이승엽은 “맞다.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다. 맺고 끊는 것이 싫어서 내린 결정을 당사자에게 얘기하면 ‘애가 변했다’는 소리가 나온다”며 서운해했다.

이승엽은 일본 생활도 꽤 외롭다고 했다.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말을 터 놓을 상대가 없어 외롭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팀 동료 아베(포수)와 나는 친한 사이다. 하지만 식사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다 못 알아듣고 통역(정창용씨)한테 물어봐야 한다. 한 다리 거치는 대화에 생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언어 소통 문제도 외로움의 이유로 꼽았다.

이승엽의 입에서는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나왔다. 일본 야구선수들에겐 선망의 대상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자리도 그에겐 스트레스의 대상이었다.

“요미우리 4번은 곧 일본 4번 타자다.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러다 보니 상대 투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요미우리 4번에 두들겨 맞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덤벼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내가 살던 아파트 건너편에 일본 TV 야구 해설위원이 살고 있었는데, (그분이) 차를 타고 가는데 누가 계속 쫓아 오기에 곧바로 내려 ‘왜 따라오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추격자가 하는 말이 “미안하다. 리상(이승엽)의 차로 착각했다”고 하더란다.

그렇지만 이승엽은 이런 스트레스를 그라운드에서 푼다고 했다. “나는 박수와 함성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 야구장에서 받는 환호가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밖에서는 힘들지만 야구인 이승엽으로 버티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에도 참가했다는 설명이다.

이승엽은 향후 계획도 털어놨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야구 인생을 끝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희망사항이었다. 돌아갈 팀(삼성)도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힘이 떨어져서 초청 선수(논로스터 인바이티)로 가든, 아니면 더 좋은 성적을 내서 가든 마지막은 결국 미국 야구가 되리라 본다. 메이저리그면 더 좋겠고.”

타이중(대만)=김성원 기자
사진=타이중=이호형 기자

[J-Hot 스포츠] 이승엽 "한국 야구, 나 같은 놈 키워라"

[J-Hot 스포츠] 촬영때 거들먹거린 안정환, 알고보니…

[J-Hot 스포츠] "중국선 핑퐁만 잘하면 BMW 굴려요"

[J-Hot 스포츠] 박찬호, 중국 MLB 시범경기 참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