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검은 상처 씻는 데 9년 세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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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가 남편 김성하씨, 아들 태현·시현군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김씨는 씨랜드 화재 사고로 큰아들을 잃자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에 살면 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자고 나면 사고가 터지잖아요. 국민도 무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사고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지요.”

1999년 6월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관 화재 사고에서 아들 도현이(당시 6세)를 잃은 김순덕(42)씨. 88 서울올림픽에서 국가대표 하키선수로 활약하며 메달 세 개를 땄던 ‘국민 영웅’ 김씨는 참사 이후 국민훈장·체육훈장까지 반납했다.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남편 김성하(46)씨와 뉴질랜드로 떠난 지 8년째에 접어든다. 오클랜드 시내에서 북쪽으로 5~10분 떨어진 중식집 ‘태화루’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 가족을 전화로 접촉했다.

그동안 김씨 부부는 하루도 식당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한다. 아픔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린 것이다. 남편 김씨는 도현이 생각이 나면 계속 흐느꼈다. 둘째 태현이(13·중 2)는 그런 아버지 곁에 가기를 꺼렸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그림 치료를 시작한 태현이는 가족을 그리면서 가슴을 온통 검정 크레파스로 도배해놨다.

‘가슴이 까맣게 탄’ 모양이었다. 치료사는 “성인이 되면 이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며 대화를 권유했다. 선진국에선 사고 피해자들의 머릿속에 파편 조각 같이 흩어진 이야기를 이어 붙여 재생함으로써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심리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가족은 대화를 통해 고통을 다 쏟아냈다.

치료 시작 2년이 지나서야 태현이가 밝은 색깔의 크레파스를 들었다. 지금 태현이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또 다른 지지대는 신앙생활이었다. 성당에 다니면서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어린 태현이도 ‘다락방’ 기도모임을 매일 찾았다. 신부님께서 “도현이가 쓰임이 있어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다. 따라갈 수 없는 자리이니 열심히 살자”고 다독였다.

2002년 생긴 막내 시현이는 생김새나 애교 많은 것이 도현이와 똑같아 도현이가 꼭 환생한 느낌이다. ‘하늘이 주신 선물’로 여기는 시현이가 이제 여섯 살이 됐다. 도현이가 입었던 옷이 꼭 맞는다.

김씨 부부는 도현이가 입던 옷을 버리지 않고 간직해 왔다. 당시 도현이와 함께 씨랜드에 갔던 유치원생 희생자 부모들과는 일년에 한두 번씩 위로 전화를 하는 것으로 추모제를 대신하고 있다.

그는 “육군 장병 헬기 추락 사고나 태안반도 기름 유출 같은 한국의 사고를 접하면 마음이 저며온다”고 했다.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는
-86년 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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