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봉하마을서 일주일 보낸 노무현 前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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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3시30분쯤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마을 입구에 나타나자 길가를 메우고 있던 노사모 회원과 관광객 등이 환호했다. 마을 광장에 마련된 행사장에 차가 멈춘 뒤 노 전 대통령이 내리자 사람들이 들고 있던 노란 풍선을 일제히 하늘로 띄웠다. 행사장 인근 사자바위에선 봉화가 피어 오르며 오색 연기를 뿜었다. 5년 임기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알리는 신호였다.
 
편안해진 노무현

“여러분 말 놓고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두 시간가량 진행된 환영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노 전 대통령이 환영객을 향해 돌발질문을 던졌다.

참석자들이 “예”라고 호응하자 노 전 대통령은 “야, 기분 좋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을 기뻐하는 외침으로 들렸다.

행사를 마치고 사저에 들어가 가족·친지들과 저녁을 먹은 노 전 대통령은 노사모 회원 행사 참여를 위해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노사모 회원들로부터 커플 반지와 2m 길이의 대형 삼겹살 불판 등을 선물로 받은 노 전 대통령은 잠깐 동안 가벼운 율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후 8시 무렵에야 노 전 대통령은 인파와 경호원들에 싸여 사저로 들어가면서 혼잣말을 던졌다.

“아따, 참 자유롭지 못하네.”

귀향 다음날인 26일에는 환영객들에게 네 번 얼굴을 보였다. 발가락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대문 앞까지 나와 ‘자유인 노무현’의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조용하고 차분하게 지내고 싶다. 느리게 사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알려줬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 인근에 있는 선영을 방문한 27일엔 기자들에게 “이 옷이 제가 내려올 때 입은 옷이에요. 옷이 어디 들었는지 몰라 가지고…”라고 털어놨다. 선영 참배를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은 형 건평씨에게 “형님, 저하고 술 한잔 하입시더”라고 제안하며 음복했다. 28일에는 부산상고(현 개성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1일에는 권 여사와 함께 긴 산책을 했다. 오후 1시30분쯤 집을 나선 뒤 부근 화포천 숲길을 세 시간가량 거닐며 관광객과 얘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더 편안해진 권양숙

노 전 대통령보다 더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은 부인 권양숙 여사인 듯하다. 26일 오후 6시쯤 사저를 찾은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 “권 여사도 함께 나오시죠”라고 권유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의 대답은 이랬다.

“머리 손질을 안 해서 못 나오신대요.”

27일 선영을 방문할 때는 코트 밑으로 보이는 운동화가 눈길을 끌었다. 노 전 대통령의 형수 민미영씨는 “(권 여사가) 집에서 상당히 편하게 있다”며 “화장도 안 하고 옷도 편하게 입고 지낸다”고 소개했다.

이날 사저를 다녀간 노 전 대통령의 한 부산상고 동문은 “두 사람 모두 집에 내려와 편해하는데 특히 권 여사가 더욱 편안해한다”고 전했다. 그는 “권 여사 말로는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모든 것에 신경이 쓰이고 말 하나하나 조심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 너무 편안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홈페이지에 첫 글

고향 생활이 일주일에 접어들면서 노 전 대통령은 점차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29일에는 김경수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의 주민등록증과 권 여사의 운전면허증을 들고 진영읍사무소에 찾아가 주민등록 이전신고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9분 새로 마련한 자신의 홈페이지 ‘노무현, 사람 사는 세상’(www.knowhow.or.kr)에 처음으로 인사말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 …한 손에는 이삿짐 들고, 한 손에는 걸레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3월에는 이 홈페이지도 주제를 놓고 서로 활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건강하세요.” 

김해=김기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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