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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4강 외교’ 100일 안에 초석 놓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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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2면

지난달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취임식 축하 사절로 온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4월 중순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국을 상대로 한 ‘실용외교’에 나선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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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다.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다. 일정은 다음달 14~20일이 조율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 축하사절로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한·미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동맹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선 전부터 언급해온 기조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방미가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 등으로 야기된 오해를 푸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 대통령의 방미는 한·미 동맹 업그레이드에 중심이 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동맹의 복원’이라는 말보다는 ‘미래지향적 동맹 강화’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지난 5년 동안 한·미 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꼭 퇴보로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양국은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을 담는 ‘한·미 동맹 미래 선언’에 공감하고 있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미래 선언’ 논의를 개시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완성된 선언문을 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작성에 수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한·미 동맹의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면 고민거리는 북핵 문제다. 북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교착 국면이 계속될 경우 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첫 대좌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내용을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늦어도 3월 중에는 6자 수석대표회담 일정이라도 잡혀야 한다는 게 정부의 기대다.

두 정상은 비자면제 프로그램의 연내 발효를 재확인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 문제 등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 의회가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 문제 해결에 대한 예측은 쉽지 않다.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논의할 것이란 관측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언급은 할 수 있지만 재론은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2012년 4월 한국군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기로 한 양국 간 합의가 이번 회담을 통해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 조야는 한·미 동맹 강화를 내걸고 있는 이 대통령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회담장도 백악관이 아닌 미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의전은 국빈 방문이 아닌 실무 방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이 9·11 이후 국빈 방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곧 있게 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워싱턴 방문은 예외다. 2006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때 중국은 국빈 방문을, 미국은 실무 방문을 끝까지 주장하는 바람에 의전이 어정쩡하게 타협되기도 했다.

일본=이 대통령의 다음 방문지는 일본이다. 방미 귀국길에 들르는 형식이라고 한다. 미·일 세트 방문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새 정부가 한·미, 한·일 관계 강화에 나서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 대통령의 4강 방문 일정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후쿠다 총리의 취임식 참석에 대한 답례 의미도 있다.

한·일 두 정상은 이미 후쿠다 총리가 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을 때 많은 것을 논의했다. 정상 간 셔틀외교와 경제 각료회의 복원,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민간경제협력기구) 설치,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양국 간 협력과 에너지 안보 분야의 협력 등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단순한 양자 관계 증진을 넘어 글로벌 이슈와 동아시아에서의 공동 협력 방안도 4월 회담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여섯 차례 회담 뒤 중단된 FTA 협상 재개 문제도 의제에 오른다. 후쿠다 총리는 7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주요국(G8)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을 초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올 한 해만 세 차례 회담이 이뤄지게 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만
남 자체로 상호신뢰 구축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키워드는 ‘성숙한 미래지향적 관계’이고 현재까지 분위기도 좋다. 이 대통령도 1일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한·일이 실용적 자세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독도·과거사 문제 등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때도 초기에 양국 정상이 제주도에서 노타이 차림으로 정겹게 회담했지만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노무현 정부 때의 한·일 관계도 일본의 과거사·독도 문제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중국=이 대통령은 5월 방중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중 정상회담은 새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 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우선 과제 중 하나가 중국 측의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새 정부가 한·중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한 단계 격상된 외교 관계를 제의했다. 취임식 축하 사절로 방한한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통해서다. 현재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설정돼 있는 양국 외교관계를 어떤 명칭으로 가져갈지가 큰 관심사다. 우리 정부는 연내 차관급 전략대화를 개최하자는 방안을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정부는 상반기에 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일정 조정이 쉽지 않다고 한다. 2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5월 7일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러시아 국내 일정 때문이다. 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총리가 되고, 그가 지원하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하다. 푸틴의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러시아 대통령 취임식 후 방문해 메드베데프와 푸틴 두 사람 모두를 만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러 정상회담은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극동 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한·러 우주기술 협력,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등이다. 러시아도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유치를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선진 도시로 개발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어 한국과의 시베리아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정부는 이 지역의 북한 노동력을 활용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3각 협력사업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반응이 호의적이라고 전한다. 현 150억 달러 수준인 양국 무역 규모를 늘릴 방안 등도 회담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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