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부동산이라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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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25면

나는 요즘 나오는 일본 소설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몇 권 읽어본 느낌을 말하자면 가독성을 위해 소설이 지닌 몇몇 장점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소설만의 독특한 장점이라면 시간을 압축하는 서술 방식, 화자의 해석이 담긴 독특한 문장 등일 텐데 그걸 포기하면서까지 가독성을 얻는다는 게 내게는 골을 많이 넣기 위해 오프사이드 규칙을 없앤 축구를 연상시킨다. 오프사이드가 있어도 호나우두는 기막힌 골을 넣는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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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정이 그렇지만, 그럼에도 찾아서 읽는 소설은 있다. 예를 들면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이 그렇다. 매니어들 사이에서는 ‘미미 여사’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들은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마쓰모토 세이초를 떠올리게 한다. 마쓰모트 세이초는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소설을 써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미미 여사의 소재 역시 사회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며칠 전 나오키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미 여사의 『이유』를 읽으면서 나는 꽤 감탄했다. 이 소설은 도쿄에 있는 25층짜리 고급 아파트가 배경이다. 이 아파트는 일본 경제가 거품을 끼고 활활 타오르던 1985년에 착공돼 89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매진 사태를 빚으며 분양된 뒤 90년 입주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 90년이란 일본 버블경제가 마침내 붕괴하기 시작한 해였다. 미미 여사는 거품 경제의 상징인 이 고층아파트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치밀하게 따라가면서 한 편의 멋진 사회소설을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미미 여사는 부동산을 둘러싼 각종 개발업자들, 즉 건축업자, 중개업자, 대부업자, 경매업자들의 잔인한 횡포와 그들에게 편승해 이익을 도모하려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냉철한 눈으로 접근한다.

개발업자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미미 여사가 소설 속에서 부동산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가지로 지적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한국 소설이었다면 이런 문제가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인 것처럼 다뤘겠지만, 미미 여사는 그게 개발업자와 관료와 언론이 서로 얽힌 사회적 문제라고 못 박는다.

김태동·김헌동 형제가 쓴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를 읽으면 그게 사회적 문제인 한에는 언젠가 터질 때가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미미 여사의 소설에서는 서로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한곳에서 죽는 사건으로 터졌지만 우리에게는 실제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인 문제인 한에는 이 문제가 겨우 장관직에 대한 개인의 꿈을 접게 만드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장관직 사퇴자들의 꿈은 부동산 때문에 꺾였으나 전국의 땅값을 올리려는 개발업자들의 꿈은 아직 꺾이지 않았으니까. 대규모 토목공사를 예고한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그 꿈을 향한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라는 제목은 한국의 소설가들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소설가 김연수씨가 격주로 책읽기를 통한 성찰의 시간을 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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