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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창작에 버금가는 의역도 하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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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 늘 궁금했던 건데 외화 제목은 어떻게 짓나. 가령'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원제를 그대로 옮긴 건가.

A : 외화 홍보 담당자들에게 제목 짓기란 밤잠을 못 이루게 하는 두통거리다. '라스트 사무라이''러브 액츄얼리'처럼 원제를 그대로 한글로 옮기는 거라면 쉬울지 몰라도 문제는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거나 우리말 번역이 영 여의치 않을 때다.

사례1-잭 니컬슨과 다이앤 키튼이 나오는'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원제는 'Something's Gotta Give'다. 영어 좀 하게 생긴 사람한테 물어봐도 열에 아홉은 꿀 먹은 벙어리. 이 영화의 홍보 담당자는 고민에 몸부림치다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문의해'하나를 얻는 만큼 하나를 주어야 하는'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제목 잘 지은 덕에 손님이 많이 들었다며 보너스까지 받았다.

사례2-열두 명의 형제 자매들이 아옹다옹하는 내용의 '열두 명의 웬수들'의 원제는'Cheaper by Dozen'. '한 다스(12개)로 사면 더 싸다'는 뜻인데 '웬수'라는 감칠 맛 나는 단어로 영화 내용을 잘 요약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단순 번역이 아니라 의역을 해야하는 경우는 '제2의 창작'에 가깝다.

그런만큼 애써 지어놓고도 칭찬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붙어야 산다'는 원제가 'Stuck on You'. 원제로 보나 샴 쌍둥이가 분리 수술을 받는다는 영화 내용으로 보나 꽤 감각 있는 작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웬걸, 관계자 얘기로는 '유치하다''촌스럽다'는 네티즌의 비난이 만만치 않았단다.

최근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도 호.오가 엇갈렸다. 무엇보다 "로맨틱 코미디인줄 알고 갔는데 속았다"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반응이 많았다. 게다가 비디오 팬들에게 인기를 끈 존 쿠색 주연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의 '짝퉁'(가짜 명품)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헐뜯기는 쉬워도 막상 하라면 어려운 것, 그것이 어디 외화 작명뿐이랴.

기선민 기자

◇기선민 기자의 '호기심 영화천국'당분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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