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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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8) 더러 불이 켜져 있기는 했지만 아파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아파트의 인부들까지 술렁거릴 일이 아닌지도 몰랐다.더군다나 사무실 사람들이 아니라면 굳이 나서려하지 않으면서 몸을 사릴 인 부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태수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아파트 골목을 걸어내려왔다.내일 일에 대비하자면 잠을 좀 자둬야 할 것 같았다.사태가 어떻게 되든,경비원이 죽은 것을 알면 일단은 오늘과는많이 태도가 달라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숙사 앞쪽으로 접어들면서 태수는 어둠 속을 가만히 살펴보았다.저기쯤 어딘가에 징용공들이 습격에 대비해서 지키고 있을 텐데.
몽둥이를 챙기느라 덜거덕대는 소리와 함께 불쑥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서라!』 이만하면 경비는 제대로 서고 있는 셈인가.태수가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나요.』 『누구냐?』 『나,태숩니다.』 『어딜 돌아다니는 거요,묻고 말고도 없이 쌔려버릴 뻔 했잖아.』 각목으로 무장을하고 머리띠를 두른 조선사람들이 우뚝우뚝 일어서는 것을 보며 태수가 말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한바퀴 돌아보고 왔습니다.』 어두운 숙사안으로 들어서려다가 태수가 몸을 돌렸다.아무래도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김씨랑 조씨는 나 좀 봅시다.』 김씨가 옆으로 다가서며 하품을 했다.
『졸려요?』 긴장을 푸느라 태수가 애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어보였다.
『조금만 더 있다가 교대하면 돼.아직 시간이 일러.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조씨 등뒤의 칠흑같은 어둠을 바라보다가 태수가무겁게 입을 열었다.
『떠난 사람들은 무사히 바다로는 들어갔습니다.』 『도망이 성공할 것 같습디까?』 『그러길 바라야지요.뒷일이야 누가 장담을하겠어요.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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