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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의패션리포트] 벌써 선보인 올 가을 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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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개최된 로에베의 2008 가을·겨울 컬렉션에 출품된 작품들. [AP=연합]

지금 지구촌은 ‘패션 위크’의 열기로 뜨겁다.

한 달 전 뉴욕에서 시작돼 런던과 밀라노를 돌아 현재 파리에서 그 절정을 향해 가고 있는 2008년 가을·겨울 여성 기성복 컬렉션.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축제의 도시들은 저마다 개성도 독특하다.

New York3주 전에 다녀온 뉴욕은 아직 추웠지만 패션 위크 본부가 있는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 주변은 멋쟁이 뉴요커들로 넘쳐났다. ‘뉴욕 시크(Chic)’는 그들을 부르는 말이다.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에 고급스러움과 세련미가 느껴지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들은 원색을 배제한 블랙과 그레이·캐멀 등의 차분한 톤을 즐겨 입는다. 큼지막한 ‘빅 백’은 뉴요커들의 바쁜 생활을 반영하는 듯하다. 뉴요커들이 이번 컬렉션 기간에 가장 많이 몰린 곳은 공식적인 패션쇼 스케줄 외에도 저녁 시간에 벌어진 각종 브랜드 행사와 파티장이다. 가장 큰 이슈는 유엔 빌딩에서 열린 ‘말라위 자선 행사’였다. 구찌와 마돈나가 함께 주최한 행사는 서너 시간 동안 수십억원의 자선 기금을 모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LA에서 날아온 톰 크루즈 부부와 데이비드 베컴 부부를 비롯해 귀네스 팰트로, 드류 베리모어 등 할리우드 ‘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구경거리였다.

뉴욕 패션 위크는 1943년에 시작됐다.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리 패션쇼를 직접 볼 수 없었던 미국 내의 저널리스트들을 위해 ‘프레스 위크(Press Week)’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뉴욕은 이제 파리나 밀라노 패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4대 패션 도시(Big4)’가 됐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경향 때문에 창조성에서 뒤지고 있다는 평가도 받지만 말이다.

London한편 런던은 뭐니뭐니 해도 ‘스트리트 패션’의 본고장이다. 패션쇼도 자유분방하다. 낡아빠진 창고나 유령이 나올법한 버려진 기차역 등 패션쇼의 장소에 격식이 없다. 놀라운 퍼포먼스도 빠지지 않는다. 패션쇼에 온 패션 에디터들이나 바이어들도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빈티지를 즐겨 입고,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저마다의 개성대로 입은 모습 그대로가 멋이다. 런던의 패션쇼 주간에는 늘 굵직한 전시들이 펼쳐져 쇼를 보러 온 이들을 유혹한다. 이번에는 2001년에 작고한 스페인 아티스트 후안 마노즈의 대규모 회고전과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의 작품을 되짚는 현대 미술전이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다.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서는 1910년대부터 인물에 초점을 둔 ‘배니티 페어’의 사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파리나 밀라노 · 뉴욕에 비해서는 패션 산업 자체의 규모가 크지 않다. 젊고 재능 있는 런던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최근 수년간 뉴욕이나 파리로 그 근거지를 옮기고 있는 형편이다. 런던은 ‘전 세계의 패션 스쿨’ 혹은 ‘패션계의 자궁’ 등의 별명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Milano밀라노는 쇼핑의 도시다. 런던이나 파리·뉴욕에 비해 도시는 작지만 품질과 디자인이 뛰어난 패션이나 인테리어, 디자인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알짜배기 쇼핑 공간이 많다. 게다가 대도시 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아웃렛이 시내 안에 유난히 많은 곳도 밀라노다. 디자이너의 아웃렛 매장을 몇 군데만 거쳐도 패션쇼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의 아이템을 주머니 예산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밀라노의 멋쟁이들은 몸매부터 다르다. ‘밀라네즈’라고 불리는 작고 날씬한 여자들은 컬러풀하고 섹시한 스타일을 즐기며 주로 스쿠터로 출퇴근한다. 밀라노 사람들에게 ‘패션’은 밥 먹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사인 것 같다. 전 세계 패션 종사자들이 모여드는 패션 위크를 밀라노의 대형 전시장인 시내 피에라에서 여는 다른 무역 전시회 같은 비즈니스의 장이라고 여기는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Paris그리고 파리. 4대 도시의 맨 마지막 스케줄로 잡혀 있는 것만 봐도 파리가 패션의 ‘주인공’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공식적인 온 스케줄과 비공식적인 오프 스케줄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화장실 갈 틈이나 점심 먹을 여유도 없이 하루에 열 개 이상의 패션쇼를 봐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패션쇼를 만날 가능성이 제일 큰 곳도 이곳이다. 또한 멋 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멋스럽고 신비로운 멋쟁이들인 파리지엔과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패션 관계자들의 차림새만 구경해도 다음 시즌 트렌드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 파리 패션쇼다. 단 15분을 위해 디자이너들이 6개월간 흘려온 땀과 노고를 축하받는 곳도 패션 위크의 마지막 스케줄인 파리에서다. 패션쇼가 끝나는 한밤이면 샴페인이 오가는 파티가 이어지며,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온 ‘패션 위크’의 여정은 막을 내린다.

강주연 패션 잡지 엘르(ELLE)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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