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고 왜곡된 확신으로 혐의 부인 전군표씨 인지 부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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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끝까지 부인한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27일 인사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군표(54·사진) 전 국세청장에게 징역 3년6월과 추징금 794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판과정 내내 뇌물받은 사실을 강하게 부인해 온 전씨의 행동을 ‘인지 부조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전씨가 확신에 찬 태도로 자신에게 뇌물을 줬다는 정상곤(54)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비난하며 공소사실을 끝까지 부인해 온 것에 대한 해석이다.

재판부는 “왜곡된 과거의 기억이 확신으로 무장돼 자신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거짓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 개념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정무직 공무원에 오른 피고인이 인사와 관련해 지방청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명예롭지 못한 사실이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씨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 방어기제를 발동, 공소사실을 적극 부인하면서 잘못을 제3자에게 투사 또는 전가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뇌물을 줬다는 정상곤씨와 받지 않았다는 전군표씨의 진술 중 정씨의 진술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이 구체적이면서 일관성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정씨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열린 정상곤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는 징역 4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돈받고 세무조사를 무마해 준 것은 지역 경제권역의 세정을 책임지는 국가 최고간부로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씨가 범죄사실을 자수하고, 통렬하게 참회하고 있는 점, 구치소 내에서 혼거수용을 자처하는 등 강한 반성 의지를 보인 점 등을 양형에 감안했다”고 밝혔다.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전군표씨는 정상곤씨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6차례에 걸쳐 현금 7000만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정씨는 부산 재개발사업 시행업체 대표 김상진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을 받은 혐의와 국세청장이던 전씨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됐다. 전씨와 정씨는 곧 항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강진권 기자

◇인지 부조화 이론=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충돌(부조화)할 경우 심리적 불편함을 덜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거짓된 사실을 믿게 되기 쉽다는 것을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에 의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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