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희극적 감정 기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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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18면

★★★★
감독 홍상수
주연 김영호 박은혜 황수정
러닝타임 144분
개봉 예정 2월 28일

‘낮과 밤’

‘낮과 밤’이 아니라 ‘밤과 낮’이다. “여자가 닭이 울었습니다 하니, 남자가 어두운 새벽이다” 하는 『시경(詩經)』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화가 김성남의 34일의 감정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일기체 영화는 밤과 낮, 꿈과 현실 속을 떠돌다 구름 같은 한 판 인생의 집으로 돌아오는 한 남자의 희극적 독백이다.

한밤중 프랑스 파리 민박집에서 남편 성남(김영호)은 한낮 서울에 있는 아내 성인(황수정)에게 울먹이며 전화를 한다. 성남은 대마초를 나눠 핀 선배가 구속되자 무작정 비행기를 탄 40대 화가로 불안과 초조 속에 파리 시내를 배회한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옛 연인과 스치고, 미술학교 학생인 척하는 유정(박은혜)을 꾀어 동침에 성공하지만 아내가 불쑥 임신했다는 거짓 전화를 해오자 급히 귀국한다. 성남은 안온함을 느끼며 자신이 그린 커다란 구름 그림 아래에서 아내를 품고 잠이 들고, 불길하면서도 야릇한 꿈을 꾸다가 깬다.

홍상수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부터 ‘해변의 여인’(2006)까지 7편의 영화에서 자잘하고 구질구질한 일상의 틈, 그 작은 차이 속을 여행하는 남과 여를 보여주었다. 늘 길 위에 서 있던 주인공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제 여덟 번째 작품에서 주인공 성남은 집으로 돌아간다. 해가 지고 밤과 낮이 서로를 껴안는 그 중립 지대에 약간 지치고 슬프지만 평온한 성남의 얼굴이 있다. ‘감정교육’으로 밤과 낮을 헤매는 우리의 평면거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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