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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수장 취임식 살펴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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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06면

세계 각국 수장의 취임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 기질, 정치체제에 따라 다르게 펼쳐진다. 취임식 단상의 외교학도 제각각이다.

美선 축하 사절 없이 ‘집안 잔치’로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초강대국답게 화려하고 장엄하다. 지구촌이 지켜보는 행사이고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제사회를 향한 것이지만 행사 자체는 집안 잔치다. 미 국무부는 해외에 축하사절 파견을 요청하지도, 상대국에서 축하사절을 파견하겠다는 요청도 거절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워싱턴의 공관에 상주하는 대사들만 초청할 뿐이다.

이런 관례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왕정인 영국에서 독립해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미국이 대통령 취임식에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로 구성된 축하사절을 받아들이기 곤란했던 것 같다.” 우리 외교관이 국무부의 의전 베테랑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 때 우리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것은 미 행정부의 공식 초청에 따른 게 아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확보한 티켓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취임식 티켓은 대선 때 고액을 기부한 사람 등 공헌자들에게 많이 돌아가고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민들을 초청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취임식 당일 새 대통령 부부는 워싱턴 시내 성요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의사당에서 취임선서와 연설을 한다. 그 다음 펜실베이니아가를 행진해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취임식은 끝난다. 이날 저녁 워싱턴 컨벤션센터 등 9곳에서 축하 무도회가 열리는데 대통령 부부는 무도회장을 순회하며 인사를 한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은 고향인 텍사스의 무도회장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취임식 경비는 수백억원이 들지만 각종 기부금과 티켓 판매로 충당하고 국가예산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남미의 대통령 취임식은 다르다. 삼바춤과 탱고 음악의 대륙답게 축제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취임식의 외교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다. 2007년 1월 15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취임식 때는 핵개발 문제로 미국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축하사절로 참석, 역시 반미 선봉에 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등과 반미 연대를 과시했다.

며칠 앞서 열린 산디니스타 반군 지도자 출신인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의 취임식장 역시 남미 반미 벨트의 단합대회나 마찬가지였다. 국가 간 경계는 있을 뿐 언어·역사적 배경이 같은 남미 국가의 취임식은 항상 의기투합식 외교행사로 치러진다고 한다.

내각책임제 나라의 취임식은 간소하다. 일본은 국회에서 지명된 총리 지명자가 헌법에 따라 왕에게 인사한 뒤 임명장을 받는다. 이날부터 총리 임기가 카운트다운된다. 외교사절을 위한 행사는 별도로 없다고 한다. 도쿄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이 개별적으로 총리 관저로 가 축하 인사를 하거나 외국 정상들로부터 축전을 받는 정도다.

프랑스의 대통령 취임식도 내각책임제 요소가 남아 있어서인지 외빈 없이 소박하게 치러지는 편이다. 취임식 장소는 엘리제궁.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핵무기 암호를 넘겨받고 주요 국정 현안을 설명받는 인수 절차를 마친 뒤 엘리제궁 앞뜰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뒤 취임연설을 한다. 엘리제궁에는 신임 대통령의 지인들과 정치 원로, 정당 당직자 등이 초대된다. 외국의 축하사절은 없다. 그들만의 잔치인 셈이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대통령궁을 출발해 샹젤리제 대로를 따라 퍼레이드를 펼친 새 대통령은 무명용사의 묘와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동상에 헌화한다. 1981년부터 95년까지 재임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취임식은 국립묘지 격인 팡테옹에서 열렸다.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취임식은 크렘린 대궁전 내에서 열리는데(옐친 대통령 때는 크렘린궁 광장)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와 전임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및 국가두마(하원)의원들, 헌법재판소 재판관, 외교사절단 등 1500명 정도가 참석한다. 외교사절의 경우 별도 초청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오는 사람만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소련 시절 한 묶음이었던 독립국가연합(CIS) 정상들은 취임식 때 초청한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후임자를 위해 축하 연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건승을 기원하는 축하 연설을 했다.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국가주석을 선출하면 별도로 취임식을 갖지 않는다.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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