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경기대책과 우리집 살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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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제기사 읽는 방법 한 가지를 최근의 실례를 들어 소개해 보자. 지난해 말부터 신문의 경제면에는 경기(景氣)가 과열인가 아닌가,진정책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다루는 기사들이 꾸준히 실렸다. 최근에는 정부가 특별한 안정책을 쓸 생각이 없다는 기사에이어 「소비성 자금인 가계대출을 억제한다」는 한은의 방침이 보도됐다. 자 이제 일반 가정의 경기에 대한 시각을 한 번 정리해 보자.
경기국면에 대한 거창한 논의는 결국 대출억제라는 미미(微微)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 경제의 총저축률은 35.2%였다.이 정도면 92년의 일본(33.8%)을 거뜬히 제치고 아마도 싱가포르.룩셈부르크(91년 각각 46.7%,44.4%)에 이어 세계 3위일 것이다.또 이같은 저축률의 거의 절반은 일 반 가계의 저축 덕분이었다.
가계대출을 조인다는 것은 바로 이들 저축의 주체들이 어쩌다 꼭 필요해 금리 1~2%를 따져가며 쓰려는 대출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실명제 아래에서의 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거액의 금융자산을 골프장 회원권 등에 미리 분산 투자해 놓은 사람들은 가계대출과는 인연이 먼 사람들이며,은행돈 안 쓰고도 얼마든지 외제차 굴리고 해외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가계대출은 모두 소비성 자금이라니 그럼 가계가 대출을받아 기업을 하나 차리기라도 기대했단 말인가.
이런 사정을 다 알면서도 애꿎은 가계대출을 조이는 것은 그래야 「소리」가 덜 나지,통화와 재정을 한 번 건드리려면 재계나정치권과의 마찰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대책을 펴려면 본 때 있게 펴고 말려면 말아야지,소비 진정의 실효(實效)도 없는 가계 대출 억제로 통화량이나 좀 낮춰보려는 미봉책을 쓸 일이 아니다.또 왕성한 투자의 뒷돈을 계속 대줘야 겠다고 판단한다면 저축 유인책을 쓰든가 해외자금을 끌어들여야지 가계대출 몇 푼 줄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제 각 가정에서도 정부의 경기대책과 살림살이를 연결시켜 분명한 시각을 갖고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
경제정책은 어차피 정치적으로 중립(中立)일 수가 없는 터에 각 경제 주체가 비판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은 독립 논쟁보다 훨씬 중요하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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