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시력 되찾으면 행복할줄 알았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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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꺼이 길을 잃어라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열음사, 400쪽, 1만2000원

CIA에서는 정보분석가로 일했고, 스키 선수였을 땐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성공한 사업가였으며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다. 마흔 여섯 마이크 메이의 삶의 완벽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그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세 살 때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었고 43년을 어둠 속에 살았다.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의사는 줄기세포와 각막을 이식하는 두 번의 수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률은 50 대 50. 다시 시력을 잃을 수도,부작용으로 암이 발병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는 이미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고, 바라는 것을 이뤘다. 살과 살이 닿는 촉감으로 한 인간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버린다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메이는 선뜻 기회를 붙들 수 없었다.

‘빛을 향해 나아가는 시각장애인의 여정’. 책 소개만으로는 주인공이 시력을 되찾아 행복해졌다는 감동 스토리여야 마땅하지만 예상은 빗나간다.

메이는 앞을 보는 게 과연 필요한지 1년을 고민한 끝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눈으로 만났다.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감격의 시간은 짧았고 보이는 것들과의 투쟁이 시작됐다. 움직임과 색깔을 알 수 있었지만 공간감·거리감·깊이감은 알 수 없었다. 만지면 아는 것을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상대가 화를 내는지, 행복한지,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앞을 보는 건 생각처럼 근사하지 않았다. 그의 뇌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읽어낼 수 없었다. 사방이 밝은 낯선 세상은 빛을 잃고 어둠 속에 남겨졌을 때만큼 절망적이었다. 메이는 지금까지와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세상을 다시 배우는 것. 이것이 빛을 향한 그의 진짜 여정이다.

저자가 따라가는 메이의 여정은 ‘시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즉, 인간의 시각과 두뇌활동의 상호작용이다. 이 간단치 않은 것을 저자는 자료를 곁들여 세심하게 설명해준다. 찬찬히 읽다보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오묘한지 새삼 느끼면서 세상이 달리 보일 지도 모르겠다.

작가인 로버트 커슨은 이 책을 위해 실존인물인 마이크 메이를 2년간 인터뷰했다. 원제 『Crashing Through』.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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