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라 트라비아타’가 스크린을 만났을 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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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화와 오페라
한창호 지음
돌베개, 440쪽
2만원

지난해 여름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이한 오페라 작품이 공연됐다. 제목은 ‘베컴의 집에서의 결혼’.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끌어들여 줄거리를 바꾼 것이다. 바람기 많은 알마비바 백작이 베컴으로, 그와 사이가 시들해진 백작 부인은 빅토리아 베컴으로 변신했다. 평론가들이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꼬여버렸다”며 혹평했지만 관객은 열광했다고 한다.

관객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 오페라는 청중을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페라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오르는 작품들은 카메라 워킹을 고려해 연출까지 바꿨다. 영상을 이용해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다. 이처럼 오페라가 수단과 방법을 바꾸면서까지 전달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페라 매니어들은 “삶과 사랑의 본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책은 이같은 오페라의 존재가치를 간파한 영화 평론가가 썼다. 오페라에 큰 관심이 없던 지은이는 어느 일요일 아침 ‘삶과 사랑의 본질’의 실체감을 문득 느끼게 됐다.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틀어놓고 늦잠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던 그는 전설적인 바리톤 티토 곱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멎었다”고 한다. “사람의 목소리가 감정을 전달하는 데 그렇게 탁월한 악기인지를 처음 깨달”은 그때부터 저자는 오페라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학 전공자로서 이론과 실제를 두루 섭렵하고 이제 오페라 팬까지 된 저자는 두 장르 사이의 상관관계를 깊이있게 잡아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왜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의 아리아를 삽입 음악으로 선택했는지,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거리의 여자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이 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무심코 보고 들었던 영화와 아리아가 기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를 친절히 풀어준다.

지은이가 서문에서 고백했듯, 오페라의 내용 대부분은 멜로드라마여서 이 책은 한 권의 “멜로드라마 연구”에 다름아니다. 오페라와 영화 각 50편씩에 담긴, 최소 100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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