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故 南宮檍선생 애국정신을 기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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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 글은 中央日報社가 폈던 「자유로 1백리 무궁화심기운동」을지켜본 필자가 우리나라 최초로 무궁화보급에 나섰던 독립운동가 한서(翰書) 남궁억(南宮檍)선생을 기리기 위해 투고한 것이다.
필자는 젊은 시절 한서선생 밑에서 직접 교육을 받았다.
경춘선 중간지점 청평댐 동쪽으로 50리가량 가면 홍천군서면모곡리(牟谷里),속칭 보리올이라는 마을이 나온다.이자리가 한서선생이 국민 의식에서 사라져가는 무궁화를 중흥시킨 지역이다.
한서선생은 풍운이 위급한 대한제국 말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한문을 수학하다 세계정세를 보고 영어를 공부,외국과 교류가 시작되자 고종황제의 어전통역을 맡았다.관직을 떠난뒤 서재필.윤치호.이상재선생과 독립협회를 창립,수석총무가 돼 국민 계몽운동을 전개했다.합병후 선생은 종교운동을 시작으로 교회와 학교를 건립하고 1918년에 모곡학교(牟谷學校)를 개교하니 선생의 명성을듣고 경향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정규 교과목 외에도 독립정신과 배일사상을 주입하는 조선이야기를 선생께서 직접 지도하시고 영어도 지도해 영어웅변대회까지 개최하셨다.한편 선생은 학교 기숙사 뒤의 3백평가량 되는 밭에 무궁화 묘포를 만드시고 시간이 있으실때나 특히 심 경이 우울하실 때 무궁화 묘포를 정성껏 가꾸셨다.
1931년11월20일 오전11시쯤 수십명의 일본경찰이 들어닥쳐 선생님댁과 청년회원 30명의 가택을 수색, 여러 짐을 압수했고 선생께서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셨으며 옥고의 여독으로 1939년 4월5일에 한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조용구〈배명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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