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만난 그는 노래와 나눔의 삶을 함께 사느라 바빠 보였다. 기름유출사고로 고통받는 태안 주민에게 5억 원을 기부한 데 이어 22~23일에는 현지로 ‘환경 지킴이’ 자원봉사까지 간다. 이날 인터뷰를 하러 오기 직전에 자신이 후원하는 ‘새 소망의 집’의 원아들로부터 태안 기부금을 깜짝 전달받았다. 고사리 손으로 아껴 모은 동전이 가득 든 노란 봉투를 들어 보이며 짓는 웃음이 참으로 환했다. 그로부터 나눔에 대한 생각과 음악적인 포부를 들어봤다.
-최근 재즈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음악 활동은 어떤가?
“와, 음악 얘기해달라니 너무 고맙다. 요즘 주변에서 나를 보면 기부 이야기만 한다. 현재 트로트·재즈·팝·발라드·힙합·클래식 등 6개의 장르를 섭렵하는 ‘마에스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장르별로 두 곡 정도를 담은 싱글 앨범을 내고 프로젝트를 끝낸 다음, (영국 런던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연하고 싶다. 현재 섭외 중이다. ”
-음악적인 포부가 아주 큰데.
“공연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 2년간 있을 120여 개의 주 가운데 60개 주를 단독 공연을 할 계획이다. 난 무대에 오를 때마다 운다. 무대 자체가 감동이기 때문이다. 내 사전에 ‘펑크’란 없다. 2002년에 공연 중 와이어에서 떨어져서 어깨뼈가 부러졌을 때도 끝까지 하려고 했다.”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던데.
“나는 아무래도 사고를 몰고 다니는 체질인 듯하다. 교통 사고, 공연 중 사고 등 죽을 고비만 5번 넘겼다. 2002년 공연중 사고를 당한 어깨는 아직도 못 쓴다. 공황장애라는 정신질환도 겪었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고통을 즐기는 거 같다. 고통을 참아낸 뒤 찾아오는 달콤한 후련함이 좋다. 그런 고통이 녹아들어 노래가 된다. 세상에 즐겁기만 한 사람도, 힘들기만 한 사람도 없다. 절망과 희망은 백지장 한 장 차이다. 절망을 노래하면서도 결국은 희망을 주는 그런 노래를 하고 싶다. 나는 가수이자 구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눔 얘기를 좀 하자. 왜 기부를 하나?
“노래도, 기부도, 행복하기 위해 한다. 기부는 노래의 연장이다.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편한 거 같다. 내가 하는 건 ‘기부 앤드 테이크(주고받기란 뜻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를 살짝 비튼 것)’다. 기부금을 내고 그 대가로 나는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나는 아무리 베풀어도 등이 따뜻하고 배부르다. 사람들이 나더러 가족들이나 먼저 챙기라고 하는데 그건 당연한 거다. 아버지 없이 자라 그런지, 엄마와 누나가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가장 기쁘다. 누가 뭐래도 가족이 최우선이다. 기부는 다음이다. 그래도 기부 금액이 매년 늘어나는 걸 보니 계속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긴 하다(웃음).”
-기부 아이디어도 공연만큼이나 다채롭다.
“난 내 기부 금액이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그 적은 돈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싶다 보니 머릿속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레슬링도 보러 가고, 기름도 닦으러 가고, 카이스트에 기부도 하고 그런 거다.”
-대통령 취임식에 ‘우리 기쁜 날’을 부르기로 했는데.
“제목이 좋지 않나. 또, 가사 중에 ‘우리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내 마음 안에 그대 자리는 자꾸 커져만 가죠’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여야 간, 그리고 당내 화합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웃음). 지지를 했던 후보이건 아니건, 일단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으면 밀어주는 게 도리라고 본다.”
-최근 한 조사에서 ‘국회에 보내고 싶은 연예인’ 1위에 올랐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나?
“전혀 없다.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답답하고 힘드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다. 나는 기부와 노래를 열심히 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숭례문과 관련해서 서울의 랜드마크를 새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미니홈피에 올려 화제가 됐는데.
“숭례문이란 단어를 감히 입에 담는 게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계속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언제까지 슬퍼만 할 순 없지 않나.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게 어떨까 싶다. 그래서 국보와 보물 자료를 모두 뒤지면서 공부를 했더니 해시계가 너무 예쁘더라. 그걸 이용해서 랜드마크를 새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고, 카이스트 교수들에게 자문도 했다.”
글=전수진,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