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타 독재 무너뜨린 혁명투사 군복 입고 시가 물고 49년간 독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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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는 현존하는 세계 국가지도자 가운데 최장기 집권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 독재 체제에 대한 서방사회의 거센 비판, 특히 미국의 직간접 제재와 압박을 받았지만 49년간 권좌를 지켜 왔다. 쿠바 동부에서 부유한 사탕수수 농장 소유주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트로는 예수회 기숙학교를 다니다 아바나 대학 법대에 입학한 후 마르크스주의 저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독재자 바티스타 장군의 쿠데타로 하원 의원 출마가 좌절된 27세의 젊은 변호사 카스트로는 1953년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면서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됐다. 100여 명의 혁명 조직을 지휘하다가 습격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특사로 2년 만에 풀려난 그는 멕시코로 망명해 소규모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카스트로가 혁명 동지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56년부터 쿠바에 잠입해 치열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카스트로는 민심으로부터 버림받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59년 혁명 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49년 동안 녹색 군복과 군모, 얼굴을 뒤덮은 무성한 수염에 큼지막한 시가,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 등 숱한 화제를 일으키며 쿠바를 통치했다.

카스트로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미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을 몰수하고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을 제창했다. 61년 4월 미국과 연계된 반혁명군이 쿠바 해안을 침공한 ‘피그스만 사건’ 이후 카스트로는 친소련 입장을 명확히 했다. 같은 해 7월 쿠바 사회주의혁명 통일당(현 공산당의 전신)을 결성하고 제1서기에 취임했다.

62년 10월에는 옛 소련의 중거리 핵 탄도 미사일의 쿠바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강경 대치하면서 쿠바가 냉전의 최전선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계속되는 경제 제재를 옛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권의 도움으로 해결하려 했다.

옛 소련은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면서 쿠바의 생명줄 역할을 했지만 80년대 이후 붕괴 위기를 겪는 옛 소련의 원조가 줄어들면서 쿠바의 경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생활고를 못 이긴 쿠바인들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도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93년엔 친딸인 알리나 페르난데스마저 미국으로 망명해 버렸다. 2000년대에 들어 카스트로의 건강 이상설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다 2006년 7월 장 수술을 받은 후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에게 임시로 국정 운영을 맡겼지만 권력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카스트로도 병고를 이기지 못해 49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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