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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驢州 金鍾鈺씨의 경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서울에선 아무래도 불효자를 면하기 어렵더라구요.
서울에서 부모를 모시고 20여년간 살다 모아둔 돈으로 고향(경기도 여주군흥청면외사리)에 전원주택을 장만한 김종옥(45)씨는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도시에 사는 노인들이 으레 그렇듯 그의 어머니도 오랜 아파트 생활에 따른 운동부족으로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텃밭이라도 가꿀수있는 전원주택에 모셔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장이 여주와 정반대인 과천에 있어 가족 모두가 옮기지 못하고 일단 부모님만 모셨다.그 대신 주말마다 자주 찾아 뵐 수 있도록 직장과 여주의 중간지점인 분당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현실과 적당히 타협 한 셈이다.
고향이 가까운 덕에「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던 金씨는 5년전 고향마을 뒤편 밭뙈기 2백평을 7백만원(평당 3만5천원)주고 사두었었다.정년퇴직후에나 자리잡을 생각이었는데 어머니의 소화불량 증세를 고치기 위해 계획 을 앞당긴 것이다. 『시골사람이 도시병 걸리면 시골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의 진단은 어떤 명의(名醫)보다도 정확했다.소화제를 달아놓고 복용해야 했던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거짓말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그뿐이 아니다.고향에 돌아갈 터전도 없고 반겨줄 핏줄도 없어그냥 서울에서만 살다보니 본향(本鄕)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 주말마다 할머니댁을 다니게 되면서 이젠 누구에게나「여주가 고향」이라고 말한다.
이 두가지만으로도 그는 원하던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지만소득은 또 있었다.마을 뒤편 후미진 땅이 그의 손을 거쳐 잔디가 곱게 깔린 아담한 전원주택으로 탈바꿈하자 땅값도 평당 35만~40만원으로 뛴 것이다.
물론 이같은 소득이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마을 대지보다 족히 1m는 푹 꺼져 집터로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땅에 15t 트럭 70여대 분의 흙을 부어 다져 다른 집보다 오히려 1m 높게 북돋워 전망을 좋게 만들었으며 그위에 잔디를 곱게 깔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농지전용에서부터 설계.건축에 이르기까지 전문분야는 전원주택 전문업체인 명가(名家)주택 광주대리점(대표 이창수.0347○653388)에서 모두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땅 고르고 정원 가꾸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그렇게 해서 지난해 6월 전용면적 22평의 전원주택(건축비 4천5백만원)이 마련됐다.
지난달에 金씨는 인접한 밭 1백80평을 1천8백만원에 사들여텃밭을 늘렸다.주말마다 내려올 때 적당한 소일거리가 필요해서다. 『부모님을 모셔야 하기 때문에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아파트 규모를 줄여 부모님을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로 모시고 자주 찾아뵙는게 3代가 모두 살맛나게 사는 길입니다.』 전원주택을 마련해 부모를 모신 뒤 그가 얻은 결론이다.
驪州=李光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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