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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大에 기혼자 신입생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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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성화(右)씨가 남편 송관철씨, 딸 지현양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임현동 기자]

3일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 벤치에 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신입생들 사이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는 것으로 보일 법한 두 명의 학생이 눈에 띈다. 같은 과 친구들의 큰언니뻘인 이들은 58년 만에 이대에 정식으로 입학한 기혼 신입생이다.

04학번으로 이대에 입학한 초등교육과 기성화(奇星花.29)씨와 약학부 전영미(全瑛美.32)씨. 두 사람 모두 이번이 두 번째 대학 입학으로 奇씨는 연세대 재활의학과 94학번, 全씨는 동덕여대 의류학과 91학번이었다.

奇씨는 2002년 10월 직장인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그만두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2001년 9월 결혼한 남편이 평소 꿈이던 초등학교 교사에 도전해보라고 격려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공계 출신인 奇씨에게 8년 만의 도전은 녹록지 않았다. 이과에서 문과로 계열을 바꾼 데다 교육과정이 바뀌어서인지 교과서 내용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과학이 제일 어렵더군요. 사회 생활을 한 덕분인지 사회과목은 이해가 잘 됐고요."

게다가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했고, 9월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여러 달 책을 놓아야 했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하게 공부를 했다는 奇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뱃속의 딸에게 확실히 태교를 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奇씨의 희망은 아이들 마음속에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교사가 되는 것. 그는 "여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의욕이 더 강한 것 같다. 공부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중소 의류업체의 디자이너(과장)였던 全씨의 경우 2002년 4월 다시 책을 잡았다. 보람있는 평생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5월 결혼한 뒤 신혼여행마저 미루며 공부에 매달린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全씨는 "신혼여행은 여름방학 때 다녀올 계획"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는 결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1946년 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 학칙을 제정했다가 지난해 2월 폐지했다. 학교 측은 기혼자 입학생이 더 있을 듯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은 이들 두명뿐이라고 밝혔다.

이철재 기자<seajay@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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