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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광객 내쫓는 ‘싸구려 패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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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숙소가 의정부 유흥가에 있었다.” “욕실에 세면용품·목욕타월도 없고 화장실엔 물이 안 나왔다.” “3일 내내 점심 메뉴가 똑같았다.” “한국인 단체요금이 6600원인 제3땅굴 투어료로 4만2000원을 받았다.”

낯 뜨거운 ‘싸구려’ 한국관광의 실태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광저우·상하이·칭다오 4개 지사를 통해 한국관광 상품을 처음으로 암행 조사했다. 대상은 4박5일에 3000~4300위안(약 36만~52만원)짜리 저가 상품 4종과 정상 상품 1종. 중국인 모니터링 요원들이 신분을 숨긴 채 일반 관광객과 동행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암행 보고서에 따르면 저가 상품의 숙소와 음식, 코스 등 각종 서비스가 수준에 턱없이 못 미쳐 중국 관광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락하는 대한민국 이미지=모니터링 요원들은 담뱃불 구멍에 피얼룩이 진 침대 시트, 야채가 대부분인 해물전골 식사, 악취 나는 화장실 등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조식 뷔페에 계란·토스트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늦게 간 사람은 거의 못 먹었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바가지 옵션 투어와 제멋대로 일정도 적지 않았다. “통일전망대 옵션투어를 안 하겠다고 하자 강제로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스키장·롯데월드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해명 한마디 없었다” “청계천엔 너무 일찍 가 루체비스타 야경을 못 봤고, 동대문시장엔 너무 늦게 가 쇼핑을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가이드도 부실했다.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능욕을 당한 뒤 살해됐다고 했다” “청계천·제주도 도깨비도로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안 해줬다”는 소리도 나왔다.

◇“영세 여행사 출혈경쟁 탓”=이런 싸구려 상품이 범람하는 것은 한국 랜드사(현지 관광진행 업체)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탓이란 지적이 많다.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박석주 과장은 “4박5일 상품이라면 가격이 최소 4500위안, 한국 랜드비(현지 관광비용)가 하루 35달러 이상은 돼야 하지만 그 이하 상품이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원가 이하로 중국 업체와 덤핑 계약을 한 뒤, 옵션투어·쇼핑 수수료로 수익을 맞춘다는 것이다.

무자격 업체도 출혈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인 관광객을 받을 수 있는 국내 여행사는 97개 지정 업체뿐이다. 하지만 다른 여행사 명의를 빌려 ‘싸구려 대리 관광’을 하는 무자격 업체가 늘고 있다. 주로 중국 국적의 조선족들이 많다. 업계에선 이런 업체가 2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너스 관광 악순환 끊겠다”=97개 지정 업체들은 중국인유치자율관리위원회를 결성하고 ‘랜드비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국내외의 중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총 106만8925명. 일본 관광객에 이어 전체 2위, 2006년에 비해 19%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관광공사는 싸구려 저질 상품이 범람할 경우 재방문객 숫자가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단기적으로 관광객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차제에 마이너스 관광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며 “문화관광부, 업계 등과 공동으로 3월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우량상품 인증제 도입 ▶일반여행업 허가제도 정비 ▶무자격 업체 단속 강화 등이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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