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테러리즘의 포로가 된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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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332쪽, 1만5000원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살아남는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나 친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 아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증오하며 자라난다. 열다섯 살이 되면, 아이는 무장단체에 가담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평생 한 가지 목표만 가지게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능한 많은 미국인과 이스라엘인을 죽이는 것. 그것이 비록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 공격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테러리즘이 생겨나는 진짜 이유다.”(168쪽)

저자는 레바논의 여성 언론인 림 하다드(39)다. 두 아이 엄마의 눈으로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의 메시지는 평화다. 전쟁 당시 네 살, 20개월이던 자신의 아이들에게 “마음에 증오를 새기지 마라. 아랍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단순한 구호만으로 복수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희망과 화해의 기초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그는 증오와 분노의 뿌리를 밝히고 있다. 중동분쟁의 정치·사회·종교적 배경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전쟁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현지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2006년 7월 13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헤즈볼라(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 저항단체)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이 명분이었다. 33일 동안의 공습으로 레바논 사람 1183명이 죽었다. 그 중 3분의 1은 어린이였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중상류층 기독교도인 림은 전쟁 초기만 해도 헤즈볼라를 원망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해 이런 혼란을 야기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습이 계속되면서 “모든 아랍인들이 헤즈볼라를 응원하고 있다. 멍청한 이스라엘,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라고 분노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증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림의 가족은 다행히 모두 살아남았다. 공습 현장을 취재하러 간 남편(‘선데이타이즈’ 종군기자)도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림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들의 비통함을 접하며 통곡을 한다. 뉴스 속에선 숫자 ‘1’에 불과한 희생자 한 명. 그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절절히 보여주는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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