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 美대사의 광주발언 배경-우회적 對韓 간접압력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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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임스 레이니 주한(駐韓)美대사가 2일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그는 이날 부임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曺비오 신부(5.18재단이사장).명노근(明魯勤)전남대교수등 재야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경수로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북한은 남한이 시혜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김정일(金正日)을 중심으로한 북한정권이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해(한국정부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 다.그는 또『남한이 시혜하는 자세로 일관해 미국의 입장이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레이니 대사의 이같은 언급은 그냥 스쳐지나칠수 없다는게 중론이다.시기적으로 그럴수 없고,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얘기다.지난 27일 일시 중단된 베를린 北-美 경수로 전문가 회의에서 북한이 미국의 구미를 당기는 제안(미국 주도의 경 수로 공급)을 했고,그런 다음 미국이 한국의 양보를 희망.종용하는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정부도 레이니대사의 정확한 발언내용과 경위 파악에 나섰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레이니대사가 정말 그런 말을 했다면 유감』이라고 말했다.
레이니 대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데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게 이 당국자의 설명이다.외교관은 통상 주재국의 입장을고려해 언행에 신중을 기하는게 관례이자 상식인데 이를 무시했다면 무슨 사정과 속셈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레이니 대사가 美정부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그렇지않아도 경수로문제와 관련해 美측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력이 우리정부에 전달되고,그로 인해 韓美 공조체제가 흔들리고 있지 않 느냐는 의문도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우리정부는 대북(對北)경수로 제공문제에 있어서 분명한「원칙」을 갖고 있으며 이를 거듭 천명해 왔다.즉▲경수로는 한국형이어야 하며▲그 공급 과정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또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가 막대한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하겠다는 입장도 밝혀두었다. 우리로서는 당연한 얘기다.결코「시혜」차원에서 경수로 문제에 접근하는게 아니라는 얘기다.북한 핵문제나 경수로 제공문제모두 우리가 시혜하고 싶어서,또는 원해서 생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美대사가「시혜적 태도」운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게 정부측 생각이다.우리 생각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무시하려는 것인지 알수 없다는 것이다.레이니 대사의 이날 발언은 美정부가 경수로 문제와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 ,실익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더 들게 했다는 지적이다.
〈李相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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