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촬영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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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꽃시샘이 좀처럼 누그러질줄 모르는 3월하순께 창덕궁엔 보슬비마저 내리고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카메라등 모든 스태프들의 시선이 궁정 나들이를 하고 있는 숙종에게로 향하고 있을 즈음 궁궐 한 모퉁이에선 무수리(나인.궁궐내에서 일 하는 여자 몸종)들이 청포를 뒤집어쓰고 옹기종기 모여 초봄 추위에 떨고 있다. SBS 『장희빈』의 녹화 촬영장인 서울 창덕궁.
인현왕후 김원희,장숙원 정선경이 일찌감치 촬영을 끝내고 그곳을 떠난 한참 후에도 한마디 대사도 없는 역을 완수(?)하기 위해 무수리들이 계속 대기한다.
언제 제 역이 돌아올지 몰라 이제나 저제나 하며 촬영중인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가에 있을 때 인현왕후가 데리고 있던 몸종인 「또순이」(은경 扮)가 나이가 어린 인현왕후가 숙종에게 시집온지 3년만에야비로소 합방을 한다는 얘기를 상궁에게 알린다.
이 한 커트가 또순이의 오늘 촬영 스케줄의 전부다.홑겹 청저고리 치마만을 걸친채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그러나 웃는 표정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시선으로 안쓰러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보인다.촬영준비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메라 앞에 도열(?)하는 모습이 잘 숙달된 전문인이다.
무수리들은 긴 시간의 대기와 순간의 촬영 후 그들끼리 모여 27일에 있을 다음 스케줄을 얘기한다.
『그날은 촬영 커트가 많다지.거의 밤을 새워야 한다던데….』늦은 시간까지의 촬영에 걱정스런 표정이 아니라 제 역들이 좀더많아졌다는데 더 관심을 보인다.세월이 지나 힘들었던 단역시절을흐뭇함으로 회고하는 큰 배우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미리 엿보았다면 지나친 억지가 될까.
무수히 많은 단역출신 명배우의 얼굴들이 함께 스쳐 지나간다.
글.사진 吳東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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