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꽃잎은 떠 물 위에 흐르고(12) 하야시가다시 한번 모자를 들어 자신의 넓적다리를 내려치더니 몸을 돌렸다.그는 덜컥덜컥 발소리도 요란하게 계단을 내려갔다.몸을 돌린화순은 붉은 종이등이 걸린 유곽을 아주 먼 어느 곳인 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노래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앗샤 앗샤,곱사등을 해가지고 이번에는 누가 또 춤을 추며 돌아가고 있는지,노래소리가 왁자한 웃음과 함께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에 번지르르 묻어나고 있었다.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저적저적 화순은 갈 곳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절에나 가 볼까.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무슨 귀신이 씌어서 절에는… 혼자 자신을 나무라면서 화순은 쓸쓸하게 웃었다.머리나 깎았으니 중일까,마누라 두고 자식 낳고 사는 일본의 중들.모르 지,부처님 모시면 중이고,사람 죽어 장례 모시면 절이지.화류계가 따로 있던가 몸팔면 그뿐,밤마다 남자와 기와집을 짓는 것도 아니고 만리장성을 쌓는 것도 아니다.
밤바람이 옷섶을 파고 스며들어 화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갈데가 없구나.술이라도 마실 때면 술을 동무삼아 미친년처럼 나다니기도 했었는데,입꼬리를 올리며 화순은 자신을 향해 웃었다.
살다보면 끝이 있을 거라고들 했어.그런데 왜 이런가 몰라.그끝이 이제 와 있는 거 같으니 말야.서러운 게 없으니 말야.
다카지마 탄광에서 출장을 왔다는 남자가 그날의 밤손님이었다.
남자는 키가 작았고,뼈가 부딪치게 몸이 말라 있었다.옷을 벗으려다가 말고 남자는 수줍음을 타듯 말했었다.
『난 조선여자는 처음이야.』 헐떡거리는 남자의 몸을 받으며 죽은 듯 누워서 화순은 스스로에게 물었다.이렇게 매일 죽어 왔던 거는 아닐까.매일 죽어가는 거는.아니야,그렇게 죽음이 한발씩 다가오는 거겠지.그럴지도 몰라.다가오는 거.그런데… 여기서빠져나간다 해도 그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그걸 몰라.남자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술냄새가 푹푹 풍겨왔다.
자신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며 남자가 심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천장이 뒤집히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화순은 힘주어 눈을 감았다.
비명을 지르며 남자의 몸이 한순간에 멈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