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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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민우가 프라자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요즘 매스컴을 탄 덕분에 환자들이 넘쳐 여간해서는 일찍 나올 수가 없다.환자들을 소홀히 본다는 것은 의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또 행여 자리를 비워 그들 중에서 섹 스 파트너를고르는 일을 등한시하는 것도 남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채신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민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열에 들뜬 게 민우를 향한 사랑을 주체못하는 것같아 보였다.그녀는 카키색 바바리를 입고 있었는데 30대 초반의 나이를처녀 같은 분위기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옷이 참 잘 어울리는 데요.10년은 젊어 보입니다.』 민우가 건너편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민우씨도 항상 소년 같아 보여요.정신이 건강하셔서 그런가 봐요.』 민우는 웨이터가 건네주는 물을 받으면서 씩 웃음을 지었다.또 고정 레퍼토리가 나올 차례다.
『그런 얘기 많이 듣죠.지금이라도 대학 신입생들과 미팅을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채신이 웃으면서 잔을 들었다. 『대학 신입생은 그렇고 졸업생 정도라면 속아 넘어갈 거예요.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민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밸런타인 데이라도 되나.아무튼 여자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면 곤혹스럽다.기억도 못하는 이것 저것들을 세세하게 기억해서 확인하고 하니까 말이다.물어보지 말고 재깍재깍 얘기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우리가 만난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에요.』 채신이 민우의손을 잡으면서 입술로 갖다댔다.
『민우씨를 사랑해요.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민우는 그녀의따스한 입술을 손등에 느끼면서 진도가 좀 빠르긴 하지만 약이 잘 주입되긴 됐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 역시 이런 느낌은 처음이오.당신을 사랑해요.』 채신이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창밖을 봤다.도대체 여자들이란 하나같이….
『저 당신 아내 하면 안돼요?』 민우는 절로 상이 찌푸려졌다.여자들과 사귈 때 가장 짜증스러운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여자들은 그냥 남자를 내버려두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어떻게든 삼켜버리고 싶은 것이다.감당하지도,책임지지도 못하면서….그래서처음부터 다시는 결 혼하지 않을 거라고 못박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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