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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막는 방패로 세웠는데 … 불로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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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숭례문은 그 자체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불을 막으려 지은 숭례문을 불로 잃은 셈이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풍수지리학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닌 숭례문의 소실을 안타까워했다. 조선왕조는 궁궐이나 도읍을 정할 때 풍수지리를 중시했다. 왕조 창건 때는 궁궐(경복궁)의 위치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무학대사는 한강 남쪽에서 오는 화기를 막으려면 궁을 동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중국의 제왕들은 모두 남향으로 궁궐을 세웠다”며 남향을 고집했다.

결국 경복궁은 정도전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향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조선 왕조는 바위로 된 악산(관악·인왕·도봉산)에서 발생하는 화기를 막기 위해 풍수적 장치를 곳곳에 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숭례문이다.

◇화기 넘어오는 길목=풍수지리학자들은 숭례문이 관악산의 화기가 한강을 넘어오는 기세를 막는 길목에 위치했다고 보고 있다.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쓴 것도 정궁인 경복궁과 도성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숭례문(崇禮門)의 한자를 세로로 보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이다. ‘불은 불로 막는다’는 풍수 이론에 따랐다고 한다. 또 숭례문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팠다. 지금 남대문에서 서울역 쪽 방향에 판 조그만 연못인데 역시 화기를 누르겠다는 의도다.

조선 왕조는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의 길도 직통으로 내지 않았다. 종각과 종로를 거쳐 우회하는 길을 만들었다. 길을 곧게 낼 경우 숭례문을 넘어선 화기가 경복궁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정종수 유물과학과장은 “숭례문은 풍수학적으로 화재를 막는 방패로 지어졌고 여러 풍수적인 보조장치를 했는데 이곳이 불에 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광화문 앞에 해태상 한 쌍을 세웠다. 불을 먹는다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는 관악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불길을 집어삼킬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역시 무학대사가 강조했던 관악산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해태상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해태상 옮긴 게 화재 원인?=숭례문 화재를 놓고 풍수학계 일각에선 다양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광화문 앞에 놓여 있던 해태상의 이전이다. 이 해태상은 서울의 대화재를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해 왔는데 광화문 복원 공사로 치워지면서 이런 참사가 빚어졌다는 얘기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6월 광화문 복원 공사를 하며 해태상을 포장해 경복궁 내의 보관 장소에 옮겨 놓았다. 문화재청은 내년에 공사가 끝나면 이를 광화문 앞쪽에 다시 세워놓을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전항수 한국풍수지리연구원 원장은 “남쪽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선조들은 여러 풍수적인 지혜를 발휘했다”며 “하지만 풍수지리적인 것을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종수 국립민속박물관 과장도 “풍수를 뒷북 치듯이 어느 현상에 갖다 붙이거나 비약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정봉·홍혜진 기자

40분 소방방재청이 “불길을 잡기 위해 숭례문 일부를 파손해도 된다”는 문화재청의 협조를 얻어낸 데 걸린 시간. 소방관들은 화재 초기 “훼손 방지를 위해 신중하게 불을 꺼달라”는 문화재청의 요청에 따라 40분 동안 물만 뿌리는 소극적인 진화를 했다.

◇해태=생김새가 사자와 비슷하고 머리에 뿔이 난 전설상의 동물. 선과 악을 분별하는 힘을 지녔다고 해 조선시대의 사법부인 사헌부의 상징으로 쓰였다. 현재 국회의사당과 대검찰청에 해태상이 세워져 있다. 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있어 흥선대원군은 광화문 앞에 두 개의 해태 석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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