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대우빌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한때 서울역 맞은편의 대우빌딩은 지방에서 막 올라온 이들에게 서울의 발전상을 알려준, 그리고 국민에겐 ‘한강의 기적’을 실감케 한 상징물이었다. 이런 대우빌딩(사진)이 다음달이면 ‘대우’의 자취를 완전히 잃게 된다. 옛 대우그룹의 계열사 중 마지막으로 입주해 있던 대우인터내셔널(종합상사)이 이사 가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음달 사무실을 인근 연세빌딩으로 옮긴다”며 “옛 대우맨들이 건물에서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다”고 11일 털어놨다. 대우에 몸담았던 한 임원도 “대우빌딩은 30년 넘게 대우맨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1977년 완공됐다. 5층으로 설계됐다가 대우의 사세가 급성장하면서 25층으로 높아졌다. 연면적만 13만2560㎡. 당시 4대문 안에 더 높은 곳이 없어 청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청와대 경호실의 지시로 청와대 쪽으로 난 창문을 모두 가리기도 했다. 옥상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방공포 4대가 설치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에게 이 빌딩은 ‘세계경영’의 총본부였다. 대우건설의 한 임원은 “90년대 초반 대우의 전성기 때 이 건물엔 저층부에 종합상사, 중층부에는 자동차, 고층부에는 주요 계열사의 사장실·기획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5층 회장 집무실에서 최고경영진이 모여 회의를 할 때면 대우의 힘이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대우는 외환위기의 파고에 98년 좌초한다. 빌딩 소유권은 대우건설에서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가전)·자동차판매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우의 터전을 등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빌딩 주인도 금호로 넘어갔다. 금호는 지난해 7월 국내 사무용 건물 거래가로는 역대 최고가인 9600억원에 이 빌딩을 미국 모건스탠리에 넘겼다. 건물 외벽에 대우건설과 금호아시아나의 로고가 달려 있지만 이마저도 연말이면 떨어진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모건스탠리 측이 리모델링 설계를 하고 있다”며 “내년 9월께면 특유의 짙은 갈색에서 다른 색깔로 확 바뀐 새 건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정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