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 기자의 영화? 영화!] 코미디 제왕이 어린이와 만났을 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한때 회자된 이분법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 인간이 있는데, 저우싱츠(周星馳)의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라는 거죠. 이 배우 겸 감독 특유의 황당무계한 코미디에 한쪽에서는 배를 잡고 뒹굴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게 과연 웃긴 건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소림축구’ ‘쿵푸허슬’을 통해 이 홍콩 출신 코미디 제왕의 저변이 지금만큼 넓어지기 전의 이야기죠.

아무튼, 국내에도 매니어가 상당한 저우싱츠가 신작으로 SF코미디 영화를 내놨습니다. 중국 등에서는 1월 말 이미 개봉한 ‘장강7호’(영어제목 CJ 7·사진)입니다. 설 직전에 잠깐 홍콩에 다녀왔는데, 상영 중인 극장이 쉽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국에서는 4월께나 개봉할 예정이라 냉큼 표를 사서 극장 안에 들어섰습니다. 뜻밖에도 어린 관객이 많더군요. 영화를 보고 나니 뜻밖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장강7호’는 찢어지게 가난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들은 잘사는 집 애들이 자랑하는 신종 장난감 ‘장강1호’를 보고 자기도 사달라고 떼를 씁니다. 사 줄 형편이 안 되는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냅니다. 대신 쓰레기장에서 고무공 하나를 주워 아들에게 안겨주는데, 알고 보니 이게 외계 생명체였던 겁니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듯, 고무공은 네 발 달린 앙증맞은 그 무엇으로 변화하고, 어린 소년은 ‘장강7호’라는 이름을 붙여 친구가 됩니다.

이야기도, 대사도 단순한 편이어서 ‘쿵푸허슬’급의 고강도 코믹액션을 기대한 열혈팬이라면 좀 실망할 법한데, 개인적으로는 꽤나 웃었습니다. ‘미션임파서블’이나 ‘쿵푸허슬’의 패러디 장면도 웃깁니다만, 특히 웃겼던 것은 말로 옮기기 좀 민망한 코딱지 장면이었습니다. 똥·코딱지·방귀 같은 배설물 3종 세트는 흔히 초등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웃음 코드로 꼽히지요. 실상 제 수준에도 맞았나 봅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도 찔금 흘렸습니다. 아찔한 고층건물에서 속칭 ‘노가다’로 날품팔이 하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느라 아등바등 하는 모습이 어딘가 낯익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고속성장의 시대, 자식교육에 미래를 걸었던 한국사회의 지나온 풍경이자 요즘 중국사회의 단면 같기도 했지요.

이 아버지, 훈계조로 거듭 말합니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망정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친구와 싸우면 안 된다 등등. 공자님 말씀 같은 이런 얘기가 새롭게 들린 것은 아마도 ‘대박 나세요’ ‘부자 되세요’가 명절 덕담처럼 돼버린 요즘 세태 때문인 듯합니다. 허풍의 극단을 달리던 과거의 유머에 비해 ‘장강7호’의 코미디는 상대적으로 순화된 듯 보입니다만, 역으로 저우싱츠의 야심이 읽혔습니다. 할리우드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이른바 가족영화 블록버스터에 도전한 것이지요.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