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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68) 경기 안성 열린우리당 김선미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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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열린우리당의 첫 총선 후보 경선이 치러진 경기도 안성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여성인 김선미(43) 중앙위원이 홍석완 전 노무현 후보 조직위 부위원장을 누르고 이 당의 후보자로 선출된 것. 전체 선거인단 5백59명 중 2백71명(48%)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김 후보는 1백80표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경쟁자인 홍석완씨는 91표를 얻는 데 그쳤다. ‘여성 후보자에게 20%를 가산한다’는 이 당의 당규에 따라 김 후보의 최종 득표수는 2백16표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성 후보로서의 가산점을 받지 않았어도 그는 더블 스코어로 경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무작위 여론조사로 선거인단을 구성했는데 그의 캠프측 진성당원(1천5백명) 중 선거인단에 뽑힌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여성도 이제 과감히 지역구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의 첫 경선이었던 만큼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당선이 돼 정말 기뻐요. 우리 유권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뀐 걸 그 날 실감했습니다. 여성으로서는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예요. 하지만 막상 도전해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두려워하지 않으면 성공한다’는 교훈을 얻게 됐죠.”

그는 지난 2002년 돌연사한 故 심규섭 의원의 배우자였다. 이 때문에 “세상 떠난 남편의 후광 덕에 된 거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정작 그는 “지난 1년 반 동안 지역에서 봉사하며 준비를 많이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국회에서 활동할 때도 지역구 활동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인생에서나 정치에서나 가장 잘 통하는 동반자였죠. 다행히 지역민들이 그런 저를 믿어 주신 거 같아요.”

▶ 김선미 후보는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시린 에바디에 대해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종교의 권위 아래 고통 받고 신음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노인,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 심 전 의원의 사망으로 치러진 2002년 8·8 보궐선거에 ‘남편의 뜻을 잇겠다’며 출마했다가 한나라당 이해구 의원에게 패했다. 준비도 부족했지만, 여성으로서 ‘조직선거’란 관행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 후 그는 관행상 유지해 온 지구당 조직을 과감히 해체했다. 그러자 ‘여자가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그를 떠났다. 남은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그는 “내 돈 내고 정치 하겠다”는 이른바 진성당원을 모집해 지구당을 새로 꾸렸다. “1%의 조직원이 아니라 99%의 지역민을 보고 뛰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그는 “법과 원칙을 지키며 깨끗한 정치를 하면 언젠가 나의 진정성을 알아줄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지역 민심을 살피는 한편 사회적 약자 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얼마 후 그 모습을 지켜본 당원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결국 오래지 않아 진성당원이 1천5백명으로 불어났다고 그는 말했다. 김 후보는 지난 해 9월 민주당을 나와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런 당적 변경에 대해 그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사실 정강정책에선 별 차이가 없지만, 개혁을 실천하는 폭이나 실현의 가능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약학과 79학번인 김 후보는 학창 시절 과학생회장을 지냈다. 적극적인 성격에 사회활동도 열심히 해 왔다.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부인회 회장, 대한적십자회 남부봉사관 안성비봉봉사회 회원, 안성 개나리 로타리클럽 회원, YFC안성지구 이사장 등의 직함이 그의 이런 전력을 잘 말해 준다.

그는 도농복합지역인 안성의 시급한 현안으로 ‘교통문제’를 지목했다. 안성을 그냥 지나치는 크고 작은 도로 때문에 수도권이면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되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이번에 등원하면 건설교통위에서 활동하면서 “이런 도로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고 밝혔다.

1985년 결혼한 그는 이후 안성을 떠난 적이 없다. ‘안성댁’은 지금도 이곳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안성은 유권자 10만5천명 중 65세 이상 노인이 15%가 넘는 고령화 도시입니다. ‘안성의 며느리’로서 지역의 어른들을 바르게 모시고 싶습니다. 과거 남편과 함께 지역민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이번엔 꼭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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