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전쟁 이기는 게 더 급해 … 미국-중국 ‘적과의 동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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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알루미늄공사의 샤오야칭(左)총경리와 미국 알코아의 앨라인 벨다 회장이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세계 3위의 광산회사 리오틴토의 지분 인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 세계 3위 광산업체인 리오틴토(영국·호주 합작)의 최고경영자(CEO) 톰 알바니즈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중국 정부·업계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났다. 세계 1위 업체인 호주의 BHP빌리턴이 지난해 11월부터 1300억 달러 안팎에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일주일 뒤인 1일 중국알루미늄공사가 미국 알코아와 손잡고 리오틴토 지분 9%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국영기업인 중국알루미늄공사는 자산 규모가 1900억 위안(약 25조원)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알루미늄 생산업체다.

AP통신에 따르면 인수 자금 140억 달러 중 알코아가 댄 돈은 12억 달러 정도다. 사실상 중국이 이번 일을 주도한 셈이다. 리오틴토의 폴 스키너 회장은 “사전에 관련 내용을 통보받지 않았다”며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중국이 BHP빌리턴의 리오틴토 인수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유는 하나다. 세계 1, 3위 광산업체가 하나가 돼 원자재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못 보겠다는 것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시가총액 3200억 달러의 초대형 기업이 탄생한다. 세계 최대 정유사인 엑손 모빌(4990억 달러),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룡 가스프롬(3270억 달러)에 필적하는 규모다.

중국이 특히 우려하는 분야는 철광석이다. 중국의 철광석 수요는 2003년 4억t에서 2007년 11억t 규모로 급증했다. 쇳물은 산업의 피다. 더 이상 외국 업체들이 자신들의 동맥을 틀어쥐도록 둘 수는 없다는 얘기다. 중국은 2005년 철광석 가격이 70% 이상 급등하자 “주요 철광석 생산업체가 마치 독점기업처럼 행동한다”며 흥분했었다.

중국알루미늄공사 샤오야칭(肖亞慶) 총경리는 “우리가 투자를 결정한 것은 세계 광산업체의 장기 전망을 밝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금을 쏟아 부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홍콩의 한 애널리스트는 “중국 입장에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라며 “분명 정부가 뒤에서 지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돈보다 자원이 더 급했다는 뜻이다.

세계 3위의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미국 알코아 입장에서도 이번 투자는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알코아는 지난해 리오틴토에 쓴맛을 봤다. 리오틴토가 381억 달러를 들여 캐나다 업체 알칸을 사들이면서 알루미늄·보크사이트 분야에서 자신들을 제쳤기 때문이다. 리오틴토는 당시 이 거래로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자원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중국알루미늄공사와 알코아는 현재로선 리오틴토 지분을 더 이상 인수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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