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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무대, ‘시선’의 차이를 고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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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07면

“처음엔 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무대를 연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워낙 스토리와 주제가 탄탄한 작품이라 결국은 영화를 닮게 되더라고요. 대신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역동성을 무대에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라디오스타’ 무대로 옮긴 김규종 연출

1월 26일 베일을 벗은 뮤지컬 ‘라디오스타’의 김규종 연출은 “영화를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대의 특성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스크린과 달리 무대는 클로즈업이 불가능하고, 시공간이 한정돼 있다. 섬세한 절제미보다 과장된 코미디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어필한다. 무대와 춤과 노래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그 자체가 드라마요, 표현수단이다. 원작 영화를 보고 “뮤지컬로 옮겨보고 싶다”고 소망했던 이래, 껍질을 깨고 부수는 7개월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무비컬 ‘라디오스타’는 그렇게 완성됐다.

‘왕의 남자’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는 2006년 개봉 당시 18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인기작이다. DVD와 안방극장 등을 통해 본 이들까지 헤아리면, 뮤지컬 관객 대다수가 자기만의 ‘라디오스타’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삽입곡들도 함께 인기를 얻었던 터라 뮤지컬 넘버를 별도로 꾸렸을 때 관객이 느끼는 낯섦 또한 만만찮다. 요컨대 영화의 유머와 페이소스를 유지하되, ‘이거다’ 싶은 독창성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무비컬 ‘라디오스타’의 흥행 엔진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테마곡 ‘비와 당신’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참신하다. 1988년 가수왕 최곤(김다현 분)이 높은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처음엔 영화에서처럼 서정적인 멜로디로 가다 갑자기 강한 록음악의 비트로 변한다. 최고의 환희를 상징하던 층계 세트는 바로 다음 순간 뱅그르르 돌아 유치장으로 변하고, 최곤은 밤무대에서 시비를 벌이다 그 안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영화의 여러 신을 효과적으로 한 장면 안에 녹인 연출이다.

“시선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카메라 앵글과 달리 관객의 눈은 무대를 한번에 보잖아요. 그래서 세트를 다채롭게 활용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영화에선 이질적인 시공간을 교차편집으로 엮을 수 있지만 무대에서 한데 모으려면 전체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게 중요하죠.”

대표적인 게 영월에서 최곤의 라디오방송을 듣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 뮤지컬에선 최곤의 스튜디오를 무대 가운데 배치하고, 마을 사람들이 스튜디오 주변에 등장·퇴장을 반복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조명이 비칠때마다 갑남을녀의 희로애락이 무대에 피어난다.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민수 찾기’ 방송 때는 최곤의 스튜디오를 무대 오른쪽에 놓고 가운데 김밥 파는 박민수를 배치해 둘의 교감을 한번에 느낄 수 있게 했다. “공연 중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 꽤나 깊은 무대 구조라 폭넓은 배치가 가능했다”는 게 김 연출의 변이다.

영화의 판타지를 무대에 살리는 것도 과제였다. 대표적인 예가 1막 초반의 ‘원더풀 영월’ 장면이다. 영월에 대한 환상이 영화에선 상상으로 처리되지만 무대에선 이를 시각화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인형 같은 종이옷을 입은 앙상블이 춤과 노래로 ‘알프스 같은 영월’을 예찬했다. 활기찬 무대가 걷힌 뒤 어둑어둑하고 쇠락한 시골 풍경이 대비되는 게 압권이다.

하지만 영화적 서사에 너무 의존하고 있어 ‘이거다’ 싶은 독창성을 느끼기엔 모자람이 있다. 김 연출은 “갈등구조를 간략하게 하기 위해 잔가지를 쳐내고 ‘단물 빠진 뒤에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남자 대 남자의 우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지만, 그 깊이를 표현하기에는 젊은 배우들의 관록이 따라주지 않는다.

특히 민수의 처연한 정서 중심으로 전개되는 2막은 떠들썩했던 1막과 대비되면서, 잘 표현될 경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단조롭게 느껴질 우려가 있다. 별자리가 수놓인 밤하늘 등 아기자기한 장면이 꽤나 있지만, 상상력을 뛰어넘는 볼거리가 부족한 점도 아쉽다.

영화 O.S.T 중 ‘비와 당신’만 편곡해 사용했고, 뮤지컬에 맞게 새로운 곡들로 채웠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각자의 사연을 담아 협화음을 이루는 ‘먼지’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등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를 집적한 ‘별은 혼자 빛나지 않아’는 원작 음악 이상의 울림을 준다. 영화에서 아마추어 록밴드 이스트리버로 분했던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는 극의 흐름에 맞지 않아 빠졌지만, 관객 요청에 의해 앙코르 곡으로 선보인다. 3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영화 라디오스타(2006)
감독 이준익 주연 박중훈·안성기·최정윤 러닝타임 115분

한물간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20년 지기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를 주인공으로 ‘변두리 인생’의 재발견을 다뤘다. 떠밀리듯 강원도 영월의 라디오 DJ가 된 최곤이, 지역민들과의 소통 속에 허상의 스타성이 아닌 인생의 진실을 깨우치는 과정을 복고적 영상에 담았다. 두 주연배우의 완벽한 호흡에 향수를 자아내는 1970·80년대 가요까지 더해져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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