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국프리즘

‘따뜻함’사라지는 서울의 문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서울시는 현재 디자인명품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디자인과 같은 고품질의 문화를 통해 서울의 도시 구조와 경관을 업그레이드하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서울시의 ‘문화(중심)시정’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몇몇 사례에서 서울시의 문화시정은 문화의 진정성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이 시민단체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데서 드러났듯 오세훈 시장은 다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시장이 됐다.

그래서 동대문운동장 철거와 같은 핵심 공약은 검토할 부분이 많았지만 공약 이행이란 명분으로 그는 철거를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 문화 코드를 강하게 끌어들였다. 서울의 문화시정은 이렇게 해서 ‘급조된 문화’를 표방한다는 감을 불식할 수 없게 됐다.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국제현상공모로 선정된 ‘자하 하디드’의 설계를 옮긴 월드디자인프라자가 들어서도록 돼 있지만, 그 장소의 문화와 어긋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의 문화시정은 대개 개발사업이란 형식으로 추진되면서, ‘하나의 문화’를 위해 ‘다른 문화’를 지우는 논리를 내부화하고 있다. 가령 도심 녹지축 조성이란 명분으로 세운상가를 허물지만 이는 전형적인 재개발사업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선 세운상가가 간직하고 있는 기념비적 건축문화와 함께 서울의 근대적 삶을 기록하고 있는 장소 문화를 학살하는 문화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사실 시가 추진하는 주요 문화사업들은 대개 서울의 역사성, 정체성, 장소성, 생태성, 일상성 등과 관련된 ‘오래된 깊은 문화’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얕은 문화’를 덧칠하는 문화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울시의 문화시정에는 서민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세운상가가 허물어지면 그곳에 오랫동안 터잡고 살았던 영세상인과 주민들은 떠나야 하고, 풍물시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이명박 시장의 약속을 믿고 들어왔던 동대문운동장의 노점상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야 하며, 한양주택이 허물어지면서 동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이는 문화시정이 ‘서민의 삶’으로부터 형성된 문화를 추구하기보다 ‘문화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문화가 이렇게 급조되고 수단화되며 삶에 대한 배려를 결여하게 된 까닭은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생성시켜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시의 문화시정이 문화민주주의에 터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소통하지 않는 문화는 관이 주도하는 문화고 전문가에 의해 강제되는 문화다. 서구 도시들과 비교한 연구에서 서울의 문화행정은 관료가 문화를 규정하고 이를 하향적으로 실행하는 경향이 두드러짐을 실제 보여주고 있다.

문화가 화두인 시대, 문화의 이러한 해석과 실행방식은 문화가 자칫 지도자의 권력행사 수단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문화의 권력화’로 불리는 이 현상은 문화가 시민에 의한 문화가 아니라 권력자에 의한 문화로의 변질을 의미한다. 서울시의 문화시정은 지금 ‘문화의 권력화’ 기미마저 띠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 부동산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