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名分에 밀려난 民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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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의장「억류」사태가 사흘째를 맞고 있다.
7일오후 1시40분.
황낙주(黃珞周)의장은 본회의 참석을 위해 공관 현관을 나섰다.「당연히」야당의원들은 저지에 나섰다.「나가니」「못나가니」승강이가 벌어졌다.
끝내 야당의원들에 떼밀려 발길을 되돌린 黃의장은 TV카메라 앞에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세상에 국회의장이 국회를 못나가게하는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눈물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의장의 눈물에 코웃음을 쳤다.『연극이 끝났으니 그만 들어가시라』고 했다.TV카메라만 들이대면 심각해진다고도 비웃었다.한편의 코미디다.
민자당은 현재 의장공관의 상황을 黃의장이 연금상태에 있다고 말한다.현경대(玄敬大)총무는 7일『감옥에 가서 회담을 할수는 없다』며 여야총무회담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기자는 그러나 사흘간 머물며 밖에서 보는 것처럼 이곳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는 것을 실감할수 없었다.
黃의장은 6일「난입한」민주당의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해장국.
떡국.설렁탕이 그날의 메뉴였다.黃의장은 식사가 끝난뒤 민주당의원들과 환담도 나눴다.주로 자신의 정치역정과 선거유세때의 무용담이 주제였다.당시 공관 밖에선 헌정사에 유례없는 의장 연금사태가 발생했다고 온통 시끄러운 상태였다.
黃의장은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변명했다.『야당의원들이 막는데난들 어쩌란 말이냐』고.
야당의원들도 비장함을 상실한지 오래되기는 마찬가지다.
7일밤 의장 공관 저지를 맡은 민주당의원들은 대부분 공관 밖에서 잤다.단지 6명의 의원만이 공관에 남아 술을 마시며「나갈생각이 없는」의장을 향해 「삼엄하지 않은」경계를 폈을 뿐이다.
여야 대변인간 논평과 성명전이 치열하고『민주주의의 목을 비트느니』『의회정치를 무시한다느니』하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현장이다.
한마디로 이곳은「너는 지키고 나는 못나간다」는 명분만 남아있다. 지금 우리정치는 외신기자들이 호기심으로 취재에 열을 올리는 부끄러운 지경에 있다.새해 첫 임시국회는 유례없는 가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들의 눈물도,부도에 짓눌린 중소기업들의 한숨도 이미 철저히 외면한채「통합선거법개정안」 공방속 에 비정상적으로 폐회됐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1년후 국민들에게『국민의 종이 되겠다』며 다시 표를 구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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