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무예>13.수벽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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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극작가 정복근(鄭福根)씨는 지난 82년 한무(韓武)라고 하는젊은 무예연구가를 만났다.
鄭씨는 마루치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한국 무사(武士)의 혼과 맥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담은 희곡 『검은 새』를 집필한 인물.
鄭씨는 한무를 통해 은류(隱流)로 맥을 이어온 한국전통 무사의 형상인「지킴이」를 보았다.
극단 미추(대표 손진책)는 출연자 전원이 6개월이상 한무의 지도로 전통무예를 익힌후「지킴이」를 창단 기념작품으로 무대에 내세워 85년 서울연극제.백상연극제에서 잇따라 연출상을 휩쓸었다. 수벽치기의 재현을 위해 20여년 동안 한 길만을 걸어온 수벽치기전인 「한무」 육태안(陸泰安.43)씨 .
그에게 무예는 생활이자 역사이고 사명이다.
국교 6년때 건강해지겠다는 욕심만으로 합기도와 가라테도장을 전전한 그는 대학 2년때 기천(氣天)과 인연을 맺으면서 무예 외길인생을 걷게 됐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부터는 계룡산에 입산,산중무술을 찾아 헤매었다. 86년 陸씨는 무형문화재 택견의 전수자인 故신한승(辛漢承)옹을 만났다.
『무예에서 발동작이 없는 손질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는 사실과 『나이가 들면서 고수(高手)가 되면 음(陰)의 성질이 강한발질은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두 가지 사실을 두고 뿌리를찾던 두사람의 지킴이가 만난 것.
택견발굴과정에서 발질위주인 택견과 쌍벽을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손질위주인 수벽치기를 찾던 辛옹과「양(陽)의 무예」를 찾던 陸씨의 만남은 필연이었고 陸씨는 『내가 하지못한 수벽치기의 발굴과 재현을 꼭 이뤄달라』는 辛옹의 유언을 받았다.
陸씨는 이후 辛옹에게 수벽치기를 가르쳤던 김일동(金日東)선생을 찾아 사사해 마침내 재현에 성공했고 주위사람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중앙문화센터에서 수벽치기 보급에 나섰다.
金基讚기자 우리 것을 찾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10년동안 몇사람의 사범급 제자들을 길러낸 그는 다시 서울을 떠났다.결국 삼별초의 본향인 제주도로 낙향,제주도 어린이들을 상대로 「지킴이꿈나무」를 발굴하는 중이다.
陸씨가 재현한 수벽치기는 힘이 감춰진 춤사위 그 자체다.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체조를 비롯,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때 국립무용단이 공연한「하얀초상」「8곡병풍」,서정자 발레「세걸음」,한국무용 홰를 비롯해 김복희.김화숙무용단의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수벽치기를 모태로 하는 우리의 몸짓이다.
이 때문인지 그의 제자 중에는 이애주교수,배우 문성근.윤석화등 몸짓으로 표현하는 연극.영화.무용계의 유명인사가 많다.

<김기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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