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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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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하면서 핵심 정보원을 ‘딥 스로트 (Deep throat)’라고 불렀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이 사건에 정보를 제공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가 장본인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그 후 마크 펠트는 31년간 이 소문을 부인하고 항의해 왔지만, 2005년 마침내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다.

소문에 대한 사전의 정의는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 사이에 퍼져 있는 사실이나 정보’다. ‘정보가 떠다니는 동안 출처가 흐려지고 내용도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대개의 소문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다른 과정을 밟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의 도시 앤트워프가 독일군에 함락됐을 때의 일이다. 독일 쾰른의 신문 ‘쾰니셰차이퉁’이 첫 보도를 했다. 제목은 ‘앤트워프가 항복했다는 소식에 종이 울렸다’였다. 현지 독자들은 당연히 독일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종이 울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달랐다. 앤트워프에서 종이 울렸다고 해석한 것이다. ‘르 마탱’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쾰른 신문이 보도한 것처럼, 앤트워프 성직자들은 함락을 받아들이는 종을 울려야만 했다’. 여기에 영국 ‘타임스’의 기사가 이어졌다. ‘르 마탱이 쾰른에서 취재한 것처럼 함락 때 종 울리기를 거부했던 벨기에 신부들이 면직되었다’. 네 번째 버전은 이탈리아 ‘코리에레 델라 세라’지에서 나왔다. ‘종 울리기를 거부했던 불행한 신부들이 강제노동형을 받았다’. 르 마탱이 다시 기사를 이어받았다. ‘신부들은 종 울리기를 영웅적으로 거부한 대가로 처형당했음이 확실하다. 그들은 신부들의 머리를 종 밑에 매달았다’.

최근 어디서 본 듯한 사건 전개가 아닌가. 다만 인터넷을 매개로 하고 내용이 괴담 수준이라는 점이 차이다. 재료는 한 인기가수가 1년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여배우 누구와 내연 관계다” “그 여배우와 관계있는 야쿠자에 의해 거세당했다” “의사인 내 친척 오빠가 응급수술에 참여했다” 등등.

특이한 점은 당사자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하자 금세 소문이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애초에 믿지는 않았지만 재미삼아 퍼나르고 증폭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병원 탐문에 나섰던 경찰도, 소문을 보도했던 언론도 머쓱해지는 대목이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