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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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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6년 12월 31일 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발칵 뒤집혔다. 간판 프로그램인 ‘NHK 홍백전’에 출연한 인기 그룹사운드의 여성 댄서들이 상반신 알몸으로 TV에 비친 것이다. “공영방송이 이게 웬 말이냐”는 항의전화가 단번에 1000건 이상 쇄도했다. 실상은 댄서들이 나체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방송사 측 몰래 알몸처럼 보이는 옷, 이른바 ‘보디슈트(bodysuit)’를 입었던 것이다. 나중에 이들이 싹싹 빌었지만 NHK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례를 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그룹사운드는 높은 인기에도 이듬해부터 NHK 출연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는 최근 10년 동안 NHK 프로그램이 선정성, 저질 및 외설 시비로 문제가 됐던 딱 한 번의 유일한 사례다. 최근 주식 내부자 거래 문제로 흔들리는 NHK이지만 공영방송의 생명이라 할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은 결코 흔들림이 없다. 광고도 없고 시청료를 원천징수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NHK의 모든 프로그램은 몇 단계에 걸쳐 철저한 검증을 받는다. 방송 용어는 물론 제작 방향이 과연 공영방송에 걸맞은지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대본을 워낙 꼼꼼히 만들다 보니 ‘홍백전’의 대본은 전화번호부보다 두껍다. 민방의 여성 아나운서들은 거의 연예인 수준의 파격을 보이지만 NHK에서 그랬다간 바로 퇴출이다. 아슬아슬한 연출이나 표현이 없어 프로그램이 재미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NHK는 어디까지나 공영방송의 역할과 ‘질’에 집착한다. 새 경지를 개척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젝트X’나 우주 시리즈 ‘미지(未知) 대기행’ 같은 걸작이 탄생한 것도 이런 고집에서 비롯됐다.

이명박 당선인이 공영방송인 KBS 2TV에서 주부의 탈선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참고로 KBS의 표현에 따르면 2TV는 ‘건전한 가정 문화채널’이란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젠 근본적 처방을 내릴 때가 됐다. 수신료를 원천징수하고, 광고는 광고대로 하면서 낯 뜨거운 저질 프로그램을 보란 듯이 내보내는 방송국에 ‘공영’의 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 KBS 홈페이지 회사 소개란의 “(공영방송) KBS는 2002년 이후 6년 연속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로 인정받고 있다”는 자체 선전 문구가 창피할 뿐이다. ‘지금까지도, 지금부터도 NHK는 공영방송입니다’란 NHK의 선전 자막이 훨씬 부럽고 탐난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