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대 이공계 출신 화려하게 빛났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호 02면

임원은 기업 경영의 핵심
임원은 ‘기업의 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임원은 까마득한 고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과 같다. 벼랑을 올라가는 길은 험하다. 굴러 떨어지는 이가 부지기수다. 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의 조사에 따르면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라도 7명 중 1명만이 임원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꽃을 손에 쥐는 순간 주어지는 보상은 너무 크다. 부장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직무권한도 확 커진다.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권한과 물질적 토대가 비로소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주요 그룹 승진·신규 임원 586명 분석해보니

그렇다면 기업 경영에서 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절대적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연세대 이지만 경영대 교수는 “기업의 승패는 임원에게 달려 있다”고 잘라 말했다. 모든 기업의 사업단위가 임원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임원의 면면을 알아보기 위해 중앙SUNDAY는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9개 그룹, 60개 사의 연말연시 임원 인사를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이번 인사에서 승진한 임원과 새로 임원이 된 586명. 24일 임원 인사를 발표한 한화 그룹과 아직 임원 인사를 하지 않은 삼성과 롯데 그룹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임원 인사의 속내를 유심히 보면 그 기업의 앞길을 어렴풋이나마 예상할 수 있다. 최고 수뇌부의 의중이 임원 인사를 통해 표출되기 때문이다.

경질 임원 적었다
올해 주요 그룹 임원 인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물러난 임원이 적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난해 실적이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로 임원급 재취업을 알선하는 헤드헌팅 업계에선 “시장이 죽었다”고 아우성이다. 물러난 사람이 있어야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데 채울 빈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중앙SUNDAY가 조사한 60개 사 중 대표이사가 바뀐 곳은 대우건설, 금호리조트, 금호개발상사 등 3개뿐이었다.

실적 향상으로 승진한 임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LG화학의 김반석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대표이사 사장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뛰어올랐다. 헤드헌팅 업체인 엔터웨이의 박운영 부사장은 “주요 기업은 경질된 임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헤드헌팅 업체에 명단을 넘겨주는데, 이번엔 명단이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며 “현 임원 체제를 유지하려는 곳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라고 풀이했다.

평균 나이는 50세
국내 주요 그룹 임원의 전형은 이렇다. 평균 나이 50세에 이공계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 이후 주로 기술직에 종사해 왔다. 이번 중앙SUNDAY 조사가 9개 그룹의 신규 임원과 기존 임원 중 승진자 등 586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만큼 주요 그룹 임원의 평균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연령대별로는 50대의 비중이 53%로 절반을 넘었다. 이어 40대가 44%를 차지했다. 평균 나이는 50세로 집계됐다.

지난해 취업정보회사인 잡코리아가 30대 기업 임원 2400명(6월 말 현재)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40대 임원 비율이 41%였고, 임원의 평균 나이는 51세였다. 기업에서 박사 학위는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586명의 임원 중 박사 학위 소지자는 4.9%(29명)에 불과했다. 다만 석사 학위 소지자 비율은 20.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이공계 출신이 주류
이번 조사에서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공과대학 진학이 임원이 되는 첩경이라는 점이다. 조사 대상 586명의 임원 중 이공계열 출신이 327명이나 됐다. 여기에 상경계열 출신(149명)을 합치면 임원 자리 10개 중 8개 이상을 이공계열이나 상경계열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자리를 놓고 인문사회계열과 법정계열 출신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가뜩이나 좁은 임원 관문이 인문사회계열 출신에겐 더 비좁다는 얘기다.

입사 이후 결정되는 직무에 따른 임원 비율을 봐도 이공계열의 유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기술직 출신 임원 비율이 36.5%로 가장 높았다. 이어 관리직(29%)·영업직(13%) 순이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제조업체에선 기술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특히 매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임원의 경우 기술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과대학이 강한 대학이 임원을 많이 배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중앙SUNDAY 조사의 임원 배출 순위에서 한양대가 서울대와 고려대에 이어 3위에 오르고, 지방대학인 부산대가 연세대를 밀어내고 4위를 차지한 것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에선 조사대상 임원 89명 중 영남대 출신이 9명으로 서울대(8명)를 제치고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에선 기업의 고려대 출신 선호 경향도 확인됐다. 고려대 출신 임원이 56명으로 영원한 맞수인 연세대(39명)를 앞섰다. 특히 SK그룹에서 고려대 출신 임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올해 인사에서 승진하거나 새로 선임된 임원 37명 중 고려대 출신이 10명(27%)으로 가장 많았다.

임원 아웃소싱 늘어난다
과거 기업들이 임원을 선정할 때 절대적으로 중요시했던 잣대는 오너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하지만 지구촌 곳곳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게 됨에 따라 글로벌 마인드를 보유한 임원을 중용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해외 경험이 풍부한 인물을 굳이 안에서만 찾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지난해 12월 임원 인사를 한 GS칼텍스는 이 회사 최초로 30대 여자 임원을 선임했다. 그 주인공은 마케팅 사관학교로 불리는 P&G코리아와 한국존슨 등을 거친 손은경(39) 상무다. 이에 앞서 지난해 하반기 LG전자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더모트 보든 동북아 대표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부사장)로, 한국코카콜라의 고경곤 마케팅 담당 상무를 중국법인 마케팅팀장(상무)으로 영입한 바 있다. 연세대 이지만 교수는 “기업의 외부 임원 수혈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10대 그룹 중 하나는 아예 최고인사책임자(CHR)에 외국인을 영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