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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대 명품관의 럭셔리 경쟁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백화점 ‘명품관’이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는? 답은 한국이다.영국의 해러즈백화점이나 미국의 버그도프굿맨, 일본의 이세탄백화점 등이 명품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처럼 명품만을 모아 팔지는 않는다. 국내에 명품관이란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90년 한화가 서울 압구정동에 갤러리아 명품관을 열면서다. 이어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이 고품격 백화점을 표방하면서 명품관 형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명품 소비가 늘자 3년 전엔 강북에도 명품관이 등장했다. 2005년 개장한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이다. 이어 신세계도 지난해 명품관을 열었다. 국내 4대 백화점의 명품 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명품관이 늘면서 고객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 백화점 명품관의 1층 매장. 각 백화점 명품관 1층에는 샤넬·루이뷔통 등 대표적 명품 브랜드가 배치돼 있다. 이들 브랜드가 매출을 올리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고급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롯데, 1% 마케팅 주력

26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 에비뉴엘. 검은색 연미복 차림에 가슴에 분홍색 꽃을 단 청년이 커다란 황금색 문을 정중하게 열어 준다. 북적이는 바로 옆 롯데백화점 본점에 비하면 한적한 느낌이 든다. 1층엔 루이뷔통·샤넬·카르티에·불가리 매장이 빙 둘러 들어서 있다. 루이뷔통과 샤넬 매장은 지하 1층까지 복층으로 꾸며져 있다. 한
매장에서 신발·가방부터 액세서리·보석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루이뷔통은 에비뉴엘의 효자 매장이다. 한 달 평균 매출이 20억∼25억원에 달한다. 2층은 시계와 보석 매장이 주를 이룬다. 로렉스·태그호이어·바셰론콘스탄틴 등 유명 브랜드가 모여 있다. 예물을 고르는 신혼부부에게 인기라고 한다. 3층엔 구두와 가방을 모아놓은 잡화 편집매장(여러 브랜드를 모아 놓은 대형 매장) ‘힐앤토트’가 있다. 세계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 70여 점을 모아 놓은 5층 ‘엘리든’에는 젊은 층
이 좋아할 만한 제품이 많다. 가격도 1, 2층 제품들에 비하면 싼 편이다.

신세계 명품관 6층 조각공원 ‘트리니티 가든’. 헨리 무어의 ‘와상’ 등 거장들의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평창동에 사는 김모(45)씨는 연 5000만원 이상을 쓰는 롯데 에비뉴엘 VVIP(최상위) 고객이다. 그에겐 가끔 백화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좋아할 만한 상품이 도착했으니 한번 들르라’는 내용이다. 그가 VVIP고객 전용 라운지로 가면 친하게 지내는 종업원(퍼스널 쇼퍼)이 취향에 맞는 상품을 준비해 뒀다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준다. 그는 이번 달엔 백화점이 보내 주는 일본 골프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기념일엔 고급 와인이나 꽃다발을 받고, 좋아하는 공연이 나오면 표도 선물받는다.

에비뉴엘은 김씨 같은 상위 1%를 위한 VVIP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밸릿파킹(대리주차) 서비스는 물론이고, 단 한 사람을 위한 패션쇼도 한다. 백화점의 VVIP 매장에 상주하며 쇼핑을 돕는 이유진(47) 매니저는 14년 경력의 베테랑. 그의 머릿속엔 이 백화점 고객 300여 명의 신상명세와 좋아하는 제품이 모두 입력돼 있다. 그는 “처음엔 VVIP 손님 대부분이 평창동이나 성북동 등 강북 부촌에서 왔지만 요즘엔 강남에서 건너오는 젊은 손님도 늘었다”고 말했다.

신세계, 문화 마케팅으로 승부

직장 2년차인 이신정(26)씨는 회사 근처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명품관)에 가끔 들른다. 6층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서다. 카페 바깥엔 멋진 조각상들이 전시된 공원이 있고, 백화점 벽에 품위 있는 그림도 많이 걸려 있어 기분 전환을 하는 데 좋다고 했다. 이씨는 “얼마 전 2층에 있는 구두 편집매장에서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이 신었던 ‘마놀로 블라닉’의 80만원짜리 구두를 샀다”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신세계 명품관 1∼2층은 초고가의 명품 브랜드들로만 채워져 있지만 4, 5층엔 100만원 이하의 캐주얼 의류나 소품도 꽤 많다. 에비뉴엘보다 2년 정도 늦게 문을 연 신세계 명품관은 문화적 명소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건물은 1930년 개관한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백화점 경성 지점이 사용하던 것이다.

신세계는 옛날 건물의 골조와 외관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고쳐서 명품관을 만들었다. 명품관의 이름을 따로 짓지 않고 ‘신세계 본점 본관’이라고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급 미술품은 신세계의 자랑이다. 맨 위층 6층 옥상에는 ‘트리니티’라는 조각 공원을 조성했다. 또 층마다 조각작품을 설치해 백화점 자체가 미술관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구성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근처에 있는 에비뉴엘처럼 현대적이고 탁 트인 느낌을 줄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최고가 브랜드인 ‘에르메스’와 ‘샤넬’ 매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고객층은 60년대부터 신세계를 이용하던 오랜 단골이 많다. 하지만 4, 5층엔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제품이나 유럽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모아 놓은 편집매장을 배치해 젊은 명품족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층에는 보석, 2층에는 신발, 5층에는 청바지와 속옷 편집매장이 있다.

갤러리아·현대, 대응 마련 부심

롯데와 신세계의 약진에 강남의 명품관들이 긴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2, 3층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새로 꾸몄다. 루이뷔통 매장도 복층으로 꾸며 확대했다. 갤러리아 명품관 역시 VIP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연간 1억원 이상 구매하는 ‘스타’급 VIP고객만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갤러리아백화점 관계자는 “한국 백화점들이 전에는 일본에서 VIP 마케팅을 배워 왔지만 요즘은 거꾸로 일본 백화점이 한국을 배우기 위해 찾아올 정도”라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2004년 원래 생활관으로 불리던 서관을 명품관 웨스트로 재단장했다. 90년 개장한 동관(명품관 이스트)까지 두 개의 명품관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이스트에 있던 루이뷔통과 구찌·로에베·세린느를 웨스트 1층으로 옮겨 명품관의 면모를 갖췄다. 지하에 고급 식품 매장이 있고 3, 4층에는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국내외 브랜드를 포진했다. 5층에는 속옷 및 아동용 의류와 전자제품·침구 등 생활용품을 다양하게 갖췄다. 모든 방문 고객에게 밸릿파킹 서비스를 한다. 갤러리아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따로 명품관이 없지만 매장 전체 컨셉트를 고품격 명품 백화점으로 잡고 있다. 명품 매출도 갤러리아에 이어 국내 2위다. 연 매출 3500만원 이상 고객은 ‘자스민’ 고객으로 분류해 5%씩 할인해 주고,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도 밸릿파킹 서비스와 전용 라운지 이용 혜택을 준다. 압구정 일대 부촌의 40~50대 고객이 주를 이룬다.

점점 어려워지는 차별화

국내에 소개된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는 에르메스·샤넬·루이뷔통·카르티에·구찌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들 브랜드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들 5개 브랜드는 백화점 입장에선 명품 매출 1~5위의 ‘귀하신 몸’이다. 고급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도 만들어 준다. 이들을 입점시키기 위해 각 백화점은 사활을 건다. 가장 좋은 자리인 1층에 넓은 면적을 할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덕분에 명품관 1층은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제품의 구색은 조금씩 다르다. 지역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남 명품관 고객들은 최신 유행에 민감하지만 강북 고객들은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남에서 유행하던 디자인이 강북에서는 5~6년 정도 늦게 전해진다고 한다. 각 명품관이 3~6층에 편집매장을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랜드별 매장은 대부분의 명품관이 비슷하다 보니 직접 제품을 선별해 자사만의 특징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신세계 4층의 ‘분더샵’, 에비뉴엘 5층의 ‘엘리든’이 대표적이다. 특별하고 희귀한 해외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와 서비스 질의 차별화는 당면 과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상위 20% 고객이 전체 매출의 73%를 올린다”며 “양극화 추세로 상위 고객의 비중이 점점 커지다 보니 VIP 마케팅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이경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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