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3.1절 상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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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독립군 후손인 학생의 학업성적이 부진하자 담당교사가 피가 나게 매질을 하면서『그렇게 돌머리이니 총을 맞지,이 넓은 세상에서 왜 총알 하나를 못피해』라고 그 선대(先代)를 들먹였다는 얘기가 있다.입시 채점의 틈새에 국가유공자 후손을 특례입학시키자는 제안에 관해 어떤 교수가 한 객담이다.그 때는 말 뜻을 몰라 얼떨떨 했는데,오늘 문득 생각난 그 이상한 얘기에서 그 교사의 애절한 마음을 알 것같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과 궁핍속에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투사들의 후손은 이 새 나라에서 오히려 낙오하고,안락한 길을 택한 타협자들의 후손이 더 발전하게 된다면 역사의 비극이겠지만 그렇게 되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그래 서인지 독립운동을 했던 편에서는 과거.이상.이념을,그 반대쪽에서는 현재.
현실.능력을 거론하기를 좋아하고,때로는 과격한 편싸움까지 한다.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것은,그리고 그들의 진정한 적(敵)은 무엇일까.단지 그 어떤 인간.조직.계급 또는 국가의 파괴일까.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을 것이고 그것에 지장을 주는 것이 적일 것이다.
이와같이 볼 때 독립전쟁은 조금도 끝나지 않았다.
오늘의 적은 이치를 깨우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고 성적은실력이 아니라 시험운이나 돈에 달린 것이라고 빈정대기만 하는 비뚤어진 생각이요,자신의 사언행(思言行)은 은폐해 두고 세 상의 대접만 받아내려 하는 불성실한 태도다.우리는 또 강대국의 위력행사를 규탄하는데 들이는 노력이상으로 서로 화합해 협력하는훈련을 하고 실력을 갖추는데 힘써야 겠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분의 은혜에는 보답하고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은 단죄해야 하지만 마치 항일 논공행상이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지난날의 편협한 도식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활달하게 상부상조해 위인 열사나 충신이 따로 필요하지 않는 태평성대를 이루고 세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세계사에 기여해 가는것이야 말로 진정한 3.1정신의 구현이라고 주장한다면 처절히 애쓰셨던 선열들의 영령은 세상물정 모른■고 하실 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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