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의 오!유방]네가 내 가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중앙일보

입력

환자는 가슴부위만 드러내놓은 채 다른 부위는 소독된 포로 감싸져 있다. 의사는 가슴에만 얼굴을 고정한 채 열심히 수술하는 중인데,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수술을 도와주는 간호사한테서 나는 소리인가 하고 주변을 살펴보아도 팽팽한 긴장감뿐 조용하다. 작은 흐느낌은 나중에는 분함을 억지로 참는 듯한 큰 울음소리로 바뀐다. 기어코 수면마취 상태의 환자는 대성통곡을 하며 몸통전체가 흔들린다. 이렇게 흔들리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가슴 수술을 계속 할 수도 없다.

환자 상태를 살펴본다. 목에 튜브를 삽입한 후 N2O 와 Ehtrane 같은 휘발성 마취제를 들어 마시는 전신마취와 달리 수면마취는 의식상태가 몽롱하다. 수술중의 지루함, 공포감 등을 없애 줄 수가 있고 환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마치 술을 많이 마신 사람처럼 이성이 많이 약해지고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물론 수술 부위는 이미 부분적으로 마취가 되어 있기 때문에 통증은 없다.

27세의 환자는 가슴이 심하게 처져서 내원했다. 나이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마치 할머니 가슴처럼 길게 처지고 늘어져서 젖꼭지가 아래를 향해 있다. 또 유륜도 많이 크고 색깔도 진해서 소위 남자들이 좋아할 모양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마취가 덜되어 아파서 억지로 참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러나 울음보가 터지면서 내뱉는 독백은 통증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네가 내 가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나쁜 자식..."

진정제를 투여해서 어느정도 환자를 안정시킨 후 남은 수술을 계속한다. 처진 가슴을 교정하는 방법은 대략 두 세가지 정도이다.

아래로 향하는 유륜과 유두를 가슴의 가운데 부분으로 옮기는 수술이다. 이때는 유두가 유방의 아래까지 내려오지 않았을 때 시행한다. 유륜 위쪽의 피부를 반달형으로 절제한 후 끌어 올려주는 수술로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처진 정도가 심해서 유두가 유방 하단보다도 더 내려왔을 때는 수술이 좀더 복잡하다. 유두와 유륜 전체를 위로 옮기기 위해 유방아래쪽으로 거꾸로 된 T 자 모양의 절개선이 만들어지면서 교정된다. 물론 수술 후에는 희미하지만 흉이 보일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은 흉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보형물을 삽입하기도 하나 환자는 수술전 조건은 까다로왔다. 유방아래로 흉을 만들지 말고 또 보형물 삽입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결국은 크고 색깔이 진한 유륜을 줄이면서 동시에 처진 유륜과 유두를 위로 올려 주는 차선책을 택하기로 하였다.

가슴만을 보며 열심히 수술하고 있는데, 자는 줄 알았던 환자는 울먹이면서 부탁한다.
"선생님. 예쁘게 해주셔야 돼요! 꼭요 !"

그러나 사전에 어려운 조건을 걸어 놓고 하는 수술의 한계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물어 본다.

" 아니 왜 이렇게 처지도록 방치했어요? "

브래지어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 아프리카 주민들을 보면 가슴이 중력에 의해 가늘고 길게 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앳된 얼굴에는 사연이 많아 보이는 듯 하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수술이 종반에 접어들자 환자는 한마디 한다.

"저, 다시 결혼 해야 돼요"
"예? "

이제 겨우 27살인데 다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 아이가 둘인데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닌다고 한다.

"아니 그러면 아이를 몇 살에 난거예요?" 대충 짐작해 보니 고등학생이거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낳은 것 같았다.

환자는 다시 흐느낀다.
"지가 내 가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이 가슴이 싫다고 떠나가 버렸어요"
어린나이에 애낳고 또 키우느라고 이렇게 된건데 이제는 이 모습이 싫다고 떠나 가버렸다고 한다.

전형적으로 조강지처에 대한 배신형이다.

"아니 신랑이 가슴만 보고 사는 것도 아닐텐데 몇살이예요? "
30살을 갓 넘긴 신랑이라고 한다.

아직도 한참 이성에 호기심이 많을 나이의 신랑과 신부. 철없는 나이에 시작한 사랑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남긴채 그 종말을 고한 듯 하다. 모든 서류가 마무리됐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가슴전문의의 수술이라도 심하게 처진 가슴을 흉없이 말끔한 27세의 처녀가슴으로 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성형외과 전문의 이 은정

[조인스헬스케어(http://healthcare.joins.com) 헬스코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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