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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寧日報제공 "중국東北의 조선족과 3.1운동"보고서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조선인은 모두 흰옷을 입고 있었다.골짜기마다 백색으로 뒤덮였다.앞장 선 사람은 큰 태극기를 휘날렸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중국 랴오닝(遼寧)일보가 본사 현대사연구소에 단독 제공한「중국 동북(東北)의 조선족과 3.1운동」이란 보고서에 서술된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됐던 3.1운동 당시의 생생한 장면 가운데 한대목이다.
이 보고서는 랴오닝(遼寧)省신빈(新賓)縣 당사(黨史)판공실 연구원으로 있는 차오원치(曹文奇)가 중국공산당 문헌의 조선족 기록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신뢰성이 높은 문건이다. 윤병석(尹炳奭.인하대)교수는『지금까지 독립운동관계 연구는주로 일본측 문헌과 유럽에 소개된 보도자료들이 인용됐다』면서 이 보고서가 인용한 자료의 참신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중국 동북의각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의 규모와 주도인물, 그리고 날짜별 상황을 종합적이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사료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그 예로 보고서에 기록된 내 용중 龍井과 和龍縣의 경우만 간략히 살펴보자.
▲龍井=3월13일 10여년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태극기를 펼쳐들고 휘둘렀다.만세소리가 터졌다.조선인들은 집집마다 태극기를내걸었다.2만여명이 참가한 전례없는 대시위가 단행됐다.동명(東明)학교 학생들이 앞장선 시위대는 무서움을 모르 고 일본경찰과중국무장군대의 총칼을 맞받아 나갔다.3월17일 각계 인사들은 의사회(義士會)를 조직했으며 4천여명의 군중들은 재차 龍井에 집결했다.그들은 사냥총과 창칼을 들고 순직한 13명의 의사를 위해 장례식을 거행했다.일부 영국 선교사도 이 장례식에 참가했다. ▲和龍縣=3월13일 東良上里 養武亭子 제3국민학교에서 40여명 학생과 인근 3백여명의 조선인이 독립운동집회를 갖고 선언서를 낭독했다.14일 철도구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참가인원은2백여명이었다.15일 최영길의 조직하에 하광포에서 5 백여명이독립운동집회를 가졌다.16일 불여우골 군중 40여명이 태극기를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삼오사.성부사.명신사.선화사 등 단체들의 조직하에 10여차례의 군중집회가 조직되었는데 참가인원은 4천여명에 달했다.
이들 두지역 이외에도 보고서는 훈춘.장족등.금당촌.초소미.유하.통화.장백.흥경.관전.환인.집안 등지에서 일어난 3.1운동상황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보고서의 특징은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조선인 생존자의증언을 적절히 인용함으로써 현장감을 사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는점이다.또 보고서는 3월12일에서 4월말까지 계속된 중국 동북지역에서의 3.1운동에 참여한 전체 조선인수가 10여만명,사망자 25명,그리고 부상자가 수백명에 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연령층도 7,8세의 어린이에서 80세에 이르는노인까지였다.이것은 중국 동북지역 조선인 거주자들이 거의 모두3.1운동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1919년2월 용정의 한 상인이 서울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의 배포가 중국 동북지역의3.1운동을 촉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시사하는 점이다.이같은 사실은 용정현 지신향 교육조에서 편찬한「지 신향 동명중학교 역사자료」에 따른 것으로 이 지역 3.1운동의 발발배경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중국 동북지역의 3.1운동이 단순히 조선인만의 독립운동으로끝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적극적인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용정 동산장학교의 중국인 학생들은 3월13일 조선인이 주도한 반일(反日)독립운동 시위에 적극 참가했다.또 신빈현 왕청문소학교 교장이었던 왕통순 등 중국인 주요인사들은 중국인 학생들을 조직해 이들이 조선인 독립운동집회에 참가 하도록적극 성원했다.
바로 3.1운동에 대한 중국인의 이런 공감대가 중국의 반일.
반제(反帝)투쟁인 5.4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서는 파악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그간 역사학계의 꾸준한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진 부분도 있다.그러나 중국 인 학자가 중국측 문헌과 자료를 토대로 알려진 사실을 검증했다는 점에서,그리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3.1운동 연구에 대한 보고서의 기여도는 매우 크다고 할 수있다.
李東炫〈本紙현대사전문기자. 政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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